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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교제·술버릇·도둑 혐의 등|온 마을의 적개심|최 하사의 살인 동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2일 밤 11시 30분쯤 강원도 춘성군 서면 서상리 2구 쇳골 마을 사람들에게 「카빈」총을 휘둘러 4명을 사살, 어린이 2명을 포함한 3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자살한 최금성(20) 하사의 광란은 토착민과 이방인의 갈등이 그 원인이었다.
통곡과 원망마저 잊은 채 시체와 마주앉은 유족들은 핏기 잃은 얼굴로 간밤의 악몽을 되씹었다.
작년 8월, 특수임무를 띠고 대원 5명과 함께 마을 정재택(44) 씨 집 사랑방을 빌어든 최 하사는 처음부터 마을사람들의 눈총을 받기 시작했다고. 성미가 급한 그는 술버릇이 좋지 않은 데다 총질을 함부로 하여 마을의 평온을 깨뜨려 버렸기 때문. 게다가 그는 마을에 들어온 지 한 달도 못되어 마을의 유지인 성모(50) 씨 셋째 딸 정숙(가명·20) 양과 사귀어 결혼말까지 오가게 되자 이에 반대하는 정숙 양의 문중,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은 한 층 더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적개심을 극도로 자극한 것은 지난 2월 10일 마을에서 팥 5말과 보리 3말이 도난 당한 사건이 난 뒤부터 「최 하사의 소행」이라는 것이 마을의 지배적인 공론이었다. 바로 지난 10일 밤 자정쯤에는 최 하사가 성인경(44) 씨 집에 숨어 들어갔다가 성씨에게 들키자 그가 잃어버렸다는 시계와 비옷을 찾으러 왔다고 도리어 성씨를 도둑으로 몰아 총개머리판으로 짓이겨 놓았다. 이 사건으로 최 하사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의혹은 더욱 굳어졌다.
마을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최 하사의 애인 정숙 양 집에서는 『제대하면 결혼하라』는 허락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4월 들어서 최 하사는 『월남에 가게 되어 결혼을 못하겠다』고 태도를 표변하는 가 하면 이번엔 같은 마을 정 모(20) 양과의 소문이 파다하게 온 마을에 퍼졌다.
최 하사의 무뢰함에 더 배겨날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최 하사를 그대로 두었다간 동네가 망한다』고 들고 일어섰다.
12일 밤 최 하사의 총에 맞아죽은 정숙 양의 당숙모 유옥란(32) 씨도 최 하사를 마을에서 몰아내자고 서두른 사람의 하나.
또 하나의 희생자 박응식(36) 씨는 지난 3월 말 최 하사와 정숙 양이 마을 방앗간 옆에서 몰래 만나는 것을 보고 마을에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라고.
범행 당일 밤에도 마을 사람들은 삼성 국민 학교에서 마을금고를 조직하는 회의를 열고 이 자리에서 최 하사의 얘기를 분대에 알려 쫓아버리자는 공론이 나왔을 정도. 이래저래 극도로 흥분한 최 하사는 바로 이 회의장에 뛰어들어 이 같은 참극을 저지르고 말았다. 【춘천=이운·김경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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