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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농협의 구판 사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작년도에 감사원은 그 감사결과 보고서에서 농협은 농민의 것이 아니라 농협 직원의 것이라고 지적한 일이 있다.
이러한 시정 촉구에도 불구하고 농협의 운영은 여전히 농민복지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는 흔적을 보이지 않고 있음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사실이다.
보도된 바에 의하며 농협은 구판 사업의 운영을 농민과 상관없는 일반 상인과 결탁하여 일반 상인의 영업세 법인세 등의 탈세를 방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구판장의 취급 수수료 수입 중 당연히 이용자인 농민에게 환불해야 할 1억천만 원을 자체경비로 유용 하는 배신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한다.
이러한 농협의 배신행위가 계속되는 한 농협이 아무리 농민의 것이며 농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봉사한다고 PR하여도 농민의 신뢰와 협조를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해방 후의 농협 성장과정을 회고하여 보아도 농협은 적극적으로 농민에 봉사한 실적을 갖고 있지 못하여 단지 정부 대행기관으로서 농민복지를 저해한 흔적이 없지 않다.
농산물 가격의 상대적인 저락 때문에 농민이 실질적으로 압박 당하고 있는 현실을 보고서도 이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농협이라면 실질적으로 농협의 존재가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질의 농기구나 농약을 알선하여 농민의 반발과 비난을 받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농협이 이제는 농민에게 환불해야 할 자금마저 유용하고서 무슨 면목으로 농민의 협조를 기대할 수 있는 가 우려하는 바이다.
물론 이러한 농협의 생리가 농협의 내부 요인만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농협이 관제 하향의 조직을 토대로 하여 하향식으로 운영되는 근본 이유는 농협의 자주성을 정부가 보장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며 농협이 타율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농협이 농민을 위하여 봉사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농협이 자발적인 농민의식으로 형성·운영되지 못하는 한 농협은 그 본래의 사명을 다할 수 없을 것이며 정부가 추진하는 농업기업화나 협업화도 그 추진력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농협이 국민경제 근대화에 기여하는 구실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 이상 농민을 방기하여서는 안될 것이며, 농민을 방기하지 않고 국민경제의 근대화에 기여케 하려면 농협을 근본적으로 민주화하는 개혁이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농협이 농민 속에 뿌리박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데 게을러서는 아니 될 것이며 동시에 농협은 정부가 지시하는 대로 순종하는 관제 농협을 탈피하기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하여 진정 농민을 위한 농협이 되도록 분발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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