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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세상] 주부 최씨의 간식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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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부엌을 많이 어지르자'.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사는 최원형(38)주부의 새해 각오다. 결혼생활 10년이 넘어도 여전히 어렵게 느끼는 부엌일과 친해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1월이 절반 가까이 지났는데도 주방을 변변하게 어지른 기억이 없다. 이대로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던 최씨가 지난 14일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방학을 맞아 열심히 잘 놀고 있는 경민이(초4)와 영준이(초2)를 위해 특별간식을 만들어 먹이기로 한 것. 냉장고.싱크대.다용도실을 구석구석 뒤졌더니 사과.참치통조림.감자 등이 눈에 띄었다.

사과는 겨울철 대표 과일, 참치는 등푸른 생선, 감자는 알칼리성 식품. 묘하게도 세가지가 영양학적 조합을 이뤘다. 게다가 나무 위, 바다 속, 땅 속의 재료를 골고루 갖춘 꼴이 됐다.

최씨는 신바람이 났다. 감자를 씻기 시작하고 냉장고 안에 달걀과 마요네즈도 꺼냈다. 모처럼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두 아이는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엄마, 뭐 해요?" 딸 경민이가 먼저 쫓아와 물었다. 아들 영준이도 뒤를 이었다.

"작전 명령 '바다와 땅, 그리고 나무'. 너희들을 쑥쑥 크게 만드는 음식을 만드는 중이다." 엄마 최씨가 평소의 장난기를 발휘해 힘주어 답을 했다. 아이들이 빙그레 웃는다.

얼마 전까지 서로 컴퓨터 게임을 먼저 하겠다면 토닥토닥 다투던 애들이 이번엔 엄마를 돕겠다고 승강이다. 최씨는 경민이에겐 참치 샌드위치 속 만드는 일을, 영준이에게는 감자 속을 파내는 일을 나눠줬다.

주방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며 '작전 명령'을 끝낸 식탁. 참치 파슬리 샌드위치.감자 통구이.사과 달걀찜, 게다가 마실 것으로 곁다리를 붙은 바나나 셰이크까지 등장했다.

두 아이가 요것 저것 먹으며 "엄마 솜씨가 이렇게 뛰어난 줄 몰랐다"며 칭찬하자 최씨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유지상 기자 <yjsang@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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