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벤처 확인제도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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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우리나라에 벤처 1만개 시대가 열렸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불기 시작한 벤처열풍이 '1만개'라는 수치로 나타난 것이지요.

그런데 이때 벤처란 정부가 '이 업체는 벤처라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경우를 말합니다.

이렇게 정부가 어떤 업체를 벤처로 인정해주는 제도를 '벤처확인제도'라고 합니다. 정부는 벤처산업을 키우기 위해 1998년 5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이 제도를 실시해왔습니다.

벤처기업으로 인정받으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선 국가에서 빌려주는 각종 정책자금을 쉽게 받을 수 있고, 법인세.지방세까지 감면받을 수 있습니다.

또 일종의 공신력이 생겨 홍보.판촉 등 대외활동에도 유리합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벤처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면 정부가 공인하는 벤처기업이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요.

다음 네 가지 중 한가지를 만족시키면 됩니다. 즉 ▶벤처캐피털이 자본금 일부를 투자하거나 ▶연구개발비가 많거나 ▶새로운 기술로 제품을 만들거나 ▶기술이 뛰어나다고 인정된 경우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중소기업청은 이 네가지 조건에 대해 상세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에는 자본금의 20% 이상을 투자받아야 합니다. 연구개발비를 많이 들여 벤처로 인정받으려면 전통적인 제조업의 경우 매출액의 5%이상, 정보처리.컴퓨터운영업은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합니다(업종마다 비율이 정해져 있습니다) .

또 새로운 기술로 제품을 만들어 벤처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기술로 만든 제품의 매출이 총 매출의 절반 이상이 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술이 뛰어나야 한다'는 규정은 애매할 수 있지만, 제3의 기관이 해당 벤처기업의 기술력을 평가하게 하고 있습니다. 가령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벤처연구소.정보통신연구진흥원 같은 기관이 객관적 기준을 가지고 심사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부의 이같은 벤처보호제도가 시장경제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벤처의 자생력을 해친다는 주장도 만만찮습니다.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뜻은 좋지만 진취적이어야 할 벤처기업에 의존심만 길러 준다는 비판이지요.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 개발에 전념해야 할 벤처인들이 좀 더 쉽게 사업을 하기 위해 벤처 확인을 받는 데만 신경쓴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비판 때문에 정부도 2007년부터는 이 제도를 없앨 계획입니다.

사실 정부로부터 벤처 확인을 못받았다고 해서 벤처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수많은 벤처들 중 좀 더 가능성있는 벤처를 발굴.지원하자는 뜻에서 이 제도가 나온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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