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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 예술·공예품 전시 판매 … 주민 ‘문화장터’ 자리매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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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기 짝이 없던 천안지역 원도심이 한 달에 한 번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젊은 예술가와 공예작가들이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모이는 날이다.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 판매하며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공연을 즐기며 하나되는 공간이 천안역 지하상가에 마련됐다. 주민들은 작가들의 열정이 담긴 작품을 감상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가수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다양한 공연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주부·회사원·시인·공예·예술가들이 오랜 기간 침체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몽땅 프리마켓’이 열린 천안역 지하상가에서 박소희씨가 전시한 양말인형 공예품을 지역 대학생들이 살펴보고 있다. 다음 달 2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행사가 열린다

12일 오후. 천안역 지하상가가 젊은이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한파가 몰아치는 매서운 날씨에도 엄마 손을 잡고 주말 나들이를 나온 아이에서부터 중·고등학생, 대학생, 주민까지 좁은 공간이 사람들로 넘쳐났다. 고요했던 지하상가가 모처럼 떠들썩한 거리로 활기가 넘쳐났다. 얼마 안돼 상가 벽마다 젊은 예술 작가들의 작품이 내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백 여 가지의 공예품들이 진열됐다. 양말과 스타킹으로 만든 각종 캐릭터와 동물 인형을 비롯해 의류, 조각작품, 그림엽서, 천연비누, 단편소설, 인테리어 소품, 한지·금속·가죽공예품, 액세서리(팔찌·머리핀·리본·머릿띠) 등 가지각색의 예술작품과 공예품들이 가득한 예술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예술가와 공예작가들이 직접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다. 저마다 개성 넘치고 섬세한 작품들이어서 주민들도 수준 높은 작품 솜씨에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대학생의 노력에 활기차게 변모한 원도심

천안시 성황동에서 3년째 ‘꼬마나무’라는 공예방을 운영하는 박소희(33·병천면)씨도 이날 다양한 공예품을 내놨다. 양말인형 공예기술을 가르치는 강사 자격증(앤싹)을 취득한 그는 비싼 인형 대신 헌 양말과 스타킹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주민과 공유하기 위해 ‘몽땅 프리마켓’의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박씨는 아이들이 신은 반 스타킹, 줄무늬·꽃무늬 발목양말, 여성양말을 단추·비즈(여성복, 수예품, 실내 장식 따위에 쓰는 구멍 뚫린 작은 구슬)·실·바늘을 이용해 달팽이·곰·펭귄·양·오리·무당벌레·당나귀·젖소·개구리 등 30여 가지의 작품을 만들어 선보였다. 지난해 호서대 패션학과를 졸업한 한장흠(27)씨도 자신의 브랜드가 새겨진 리사이클링(재활용) 작품을 전시했다. 폐기해야 할 간판과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가죽으로 만든 가방·지갑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간판에 새겨진 글씨와 모양이 제 각각이어서 개성있는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인지 젊은이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씨는 “비록 버려져야 할 간판이지만 저마다 특색있는 천 조각을 잘라 가죽으로 엮어 만든 가방은 개성적이고 환경·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더 없이 좋은 작품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가죽공예의 한 분야지만 실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고 작품 속에 내가 만든 브랜드를 넣어 보람과 자긍심도 느낄 수 있어 좋다. 이런 작품을 주민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몽땅 프리마켓’에는 예술작품과 공예품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역 고교생과 대학생 등 젊은이들로 구성된 밴드 공연이 ‘몽땅 프리마켓’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슈퍼스타 K에서 유승우를 배출한 성환고 학생들로 구성된 밴드는 청중을 압도하는 노래 실력과 무대 매너로 자신들의 끼를 마음껏 발산했다. 단국대 학생들이 뭉쳐 만든 밴드들도 다양한 장르의 곡을 선보이며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십 수 년간 정체돼 있던 천안역 일대 원도심을 대학생들이 나서 지역 작가, 청소년, 주민이 공존하는 거리로 변화시켰다. 평소 원도심 활성화와 문화기획에 관심이 많았던 문기훈(24·단국대 시각디자인과)씨. 문씨는 지난해 한 작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 대전으로 갔다가 우연히 문화시장을 지켜봤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컨셉으로 대전 선화동의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작은 프로젝트였는데 지역 작가들이 소액의 참가비를 내면 자신의 창작품을 전시,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

문씨는 천안에도 이와 같은 예술·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많은 대학이 자리한 천안이지만 막상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은 전무한 실정이어서 아쉬움이 많았던 터였다. 어린이와 학생,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해답을 찾은 그는 ‘몽땅 프리마켓’을 기획했다. 그러나 새로운 문화 공간을 창출해 낸다는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원도심 활성화라는 주제로 천안에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그의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함께 모인 친구와 선·후배들은 지난해 여름방학부터 천안만의 프리마켓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아이디어 회의를 가졌다. 전공도 각기 다른 7명의 학생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동행했고 ‘몽(夢)땅’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앞을 가로 막았다. 빈 공간에 새로운 문화를 채울 작가들을 찾는 일이었다. 천안에 모든 계층이 모이는 문화·예술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리기도 쉽지 않았다. 기획·홍보·디자인·마케팅·퍼포먼스 등 여러 분야에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각자 자신 있으면서 좋아하는 분야를 맡아 매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 대학이 개강했고 학생들은 공부를 병행하면서 프리마켓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수업, 리포트 작성, 행사 준비 등으로 밤낮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수업 후 쉬는 시간에는 각 교실을 다니며 ‘몽땅 프리마켓’을 알렸다. 수업이 없는 날과 휴일에는 작가들을 섭외하기 위해 지역 공예방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참여를 권유했다. 온라인으로는 SNS를 활용하는 등 학생 신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고 우여곡절을 끝에 지난해 10월 ‘몽땅 프리마켓’이 문을 열었다.

몽땅 프리마켓에서 지역 작가들이 만든 각양각색의 공예품들

문기훈씨는 “천안에는 대학교가 밀집해 있지만 학생들을 위한 문화는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것들도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아 늘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싶었다”며 “천안지역 고교생, 대학생, 젊은 작가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사고 팔 수 있는 꿈이 피어나는 자유로운 공간이 마련된 만큼 앞으로도 작가들과 시민들이 건강한 만남을 통해 음악, 퍼포먼스, 이벤트, 수준 높은 작품이 함께 어우러지는 꿈의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씨는 이어 “원도심 활성화라는 취지 아래 천안역 상권이 다시 부활하고 남녀노소 모두 몽땅 프리마켓이라는 문화 안에서 행복하길 바란다”며 “한 달에 한 번이 아닌 365일 치러지는 몽땅 프리마켓을 만들 수 있도록 모든 구성원이 열심히 달리겠다”고 덧붙였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몽땅=있는 그대로 모두를 가르키는 사전적 의미가 아닌 꿈의 땅을 말한다. 몽땅 프리마켓은 다양한 장르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두 모여 주민과 함께 즐기고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시장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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