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년 재판에 가산 탕진한 촌로 부당한 판결엔 굴치 않겠다|법의 날 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죽어도 부당한 판결 앞엔 굴복하지 않겠십니더』-경북 상주군 합창면 구향리 214에 사는 김의식(59) 노인은 법원으로부터 정당한 절차를 밟고 경락 받은 경매임야를 사찰림이란 이유로 다시 빼앗기게 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부당하다고 주장. 10년째의 판결불복투쟁을 하고 있다. 그는 상주에서 4백50리 길을 8일에 걸쳐 도보로 상경 다시 이 사건을 심판했던 당해 법관전원을 걸어 헌법 61조에 의한 탄핵심판을 해주도록 국회에 청원서를 냄으로써 법의 날에 앞서 화제를 던졌다.
그는『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상주 장날에 법원 앞을 지나가다 게시판에 붙은 경매공고를 본 불운 뿐』이라고 했다.
그는 10년 전인 1957년5월 대구지법 상주지원에서 경매 공고한 문경군 가은면 원북리산 54의1소재 임야 8백77정보와 같은 임야 산1의 1소재 1천4백35정9단보의 경매에 인근주민 3명과 함께 응찰, 그해 5월11일 법원으로부터 김씨에게 73만환에 경락허가결정이 내려져 등기세까지 물고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는 것이다.
문제된 이 임야는 당시 봉암사 주지와 주민 서윤석(문경군 마성면 신기리80)씨간에 원목 3만9천76재에 대한 채권관계로 화해판결 끝에 경매에 돌려진 것이다.
그런 뒤 몇 달이 지난 그해 12월 20일께 봉암사측에서 김씨를 걸어 느닷없이 동 임야에 대한「원인무효의 등기말소청구소송」을 냈다.
이것이 그에겐 파란 많은 법정투쟁의 불씨가 되었다.
1심인 대구지법 합의부는 이 사건의 심리에서 이 임야가 김씨 앞으로 소유권 이전 등기된 것은 사찰령 5조의 규정에 따라『사찰재산은 정부의 인가 없이는 이를 양도하거나 담보에 제공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김씨에게 패소를 판결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대구고법에 항소, 58년5월 대구고법 홍남표 재판장은『사찰령에 적시된 주무장관의 허가는 사찰재산을 임의로 처분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법원의 강제 경매 결정에 의해 처분되는 경우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해석, 이번엔 김씨에게 승소를 판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62년 대법원은 1심 판결의 요지대로 김씨의 패소를 확정시킴으로써 김씨의 소유권 이전등기는 말소되어 이 임야는 다시 봉암사측에 되돌아가게 된 것이다.
8세 때 부모를 여의고 이집 저집 전전, 15년 동안의 머슴살이 끝에 논 25마지기와 밭 10마지기를 벌고 5남2녀를 둘만큼 알뜰한 가정을 꾸렸었다는 김씨는 그때『집안의 선산이라도 마련할 셈으로 불현듯 산을 사고 싶었던 것이 이 꼴이 되었다』고 심경을 말했다.
그는 당시 논 8마지기를 팔아 73만환의 경락대금을 치렀으며 나머지 땅과 가산조차도 그 동안의 소송비용에 모두 팔아 썼다는 것. 지금은 가족마저 사방으로 흩어진 채 그는 닳아빠진 한 권의 법률 책을 지팡이처럼 들고 다니면서『이제 그 땅을 찾을 생각에 앞서 남은 여생을 바쳐 판결의 옳고 그름을 끝까지 밝혀보겠다』는 집념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