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애불에 나타난 역사적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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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한국의 마애불』은 우리나라 전국에 산재한 2백여개가 넘는 마애불(磨崖佛) 가운데 1백8개를 엄선해 그 역사적 의미와 한국인의 미의식이 어떻게 투영돼 있는가를 조감하고 있다.

사진집을 겸한 이 책에는 한 곳 당 각도를 달리한 3~6컷의 사진들을 싣고 있어 독자에게 입체감 조망을 가능케 한다.

마애불이란 바위에 새긴 불상(佛像) . 이에 대한 총체적 조사 분석은 다른 불교미술 영역보다 비교적 소홀한 편이다. 그런 점에서 글을 쓴 이태호(전남대 미술대) 교수와 전통문화유산 전문 사진작가 유남해씨 등이 1백8곳을 일일이 답사하며 살아있는 표정을 담아 내고자 한 선구적 의의를 일단 찾을 수 있다.

마애불 각각의 위치와 방향, 크기, 배경 설화, 신앙 형태, 그리고 시대별 조각양식 등이 책의 큰 줄거리이기 때문에 서술이 마치 보고서처럼 다소 딱딱한 곳도 일부 있지만 답사 안내서로는 손색이 없다.

이교수가 쓴 40여쪽의 논문 '한국 마애불의 유형과 변모'를 앞에 실어 마애불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돕는다.

"마애불은 서기 600년을 전후한 백제의 서산 마애삼존불에서 시작, 미륵불의 개념으로 고려시대때 정착했고, 유교가 정치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엔 줄기도 했지만 구한말까지 1천3백년 동안 2백여 곳 넘게 전국에 걸쳐 조성되어 왔다"고 이교수는 말한다.

그런데 그 마애불엔 부처의 이상화된 형상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어린애 같은 표정으로, 때로는 인자한 표정으로, 때로는 심통이 가득차거나 혹은 목에 잔뜩 힘을 주어 권위를 내세운 자세로, 때로는 수더분한 시골 아저씨 같은 편안함으로 혹은 못난이 상으로 묘사된" 1백8개 마애불의 가지가지 표정에서 한국인의 용모와 심상의 원형을 발견함과 동시에 세속적 삶의 백팔번뇌와 풍파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마애불의 특징은 "마애불을 새긴 암벽이나 바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변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대적 의미의 '환경 조각'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어떤 것은 산속 깊이 숨은 은자의 모습으로, 어떤 것은 삶터에 내려앉은 지킴이로, 어떤 것은 세상을 굽어보는 하늘미륵으로 존재하면서 전통문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한번 음미해봄직한 우리 조각예술의 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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