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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우짠 일인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박영재씨 집>
『참말이요? 우짠 일인교…』박영재씨 부인 정선화(33)씨는 울음조차 잃고 넋이 빠졌다. 12년 전 결혼, 슬하에 성욱(11·본동 국민교3년)군 성숙(4)양 남매를 데리고 서울 영등포 동양 고무공장 직공으로 하루벌이 1백원으로 입에 풀칠하면서 월남에 간 남편이 4월말께 돈을 가불해 보낸다는 지난 25일 마지막 편지에 기뻐 어쩔 줄 몰랐다는 정씨는『방송엔 박응제라던데 정말 내 남편입니껴?』몇 번이고 믿어지지 않는 듯 되묻곤 했다.
서울 영등포구 봉천동 산49 헐벗은 산비탈 수재민촌 천막 안 손바닥만한 가마니 조각 위에 주저앉은 정씨는『지난 19일 첫 편지에 고춧가루를 보내달라고 하기에 보낼라카니 돈이 비싸서 못 보냈심더』이렇게 한숨쉬었다. 이발소에서 자기 입에 풀칠도 못한다는 시동생 영수(29)씨 내외, 또 영길(14)군, 시어머니 최차순(57)씨 등 일곱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15만원이나 빚 내어 밑천들인 월남 길이 죽음이었다니…』도무지 의심스러운 듯 되풀이하는 정씨는『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어렵게나마 이대로 살걸…』중얼거리면서『앞길이 캄캄합니더』고개 숙여 눈시울을 닦았다.

<채경호씨 집>
미8군에서「불도저」운전사로 일하면서 국학대학 정치과 야간을 졸업한 채경호씨도 3년 전 8군에서 해고당하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돈번다』는 희망을 안고 월남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채씨의 부인 윤명숙(37)씨는『꿈이지 생시에 그럴 리가 없다』고 되뇌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개발공사로 달려갔다.
생활고 때문에 장녀 향희(11) 장남 만식(12)군을 각각 금양국민학교 4년, 6년에서 중퇴시키고 2남 효식(8)군만 이번 아빠가 돈벌어 보낸다는 생각에 응암국민교에 입학했었다. 서울 용산구 신창동86 셋방에서 아빠가 돈 부칠 동안 먹고 살 수 없어 외가집인 응암동 산8 윤명기씨 집에 지난 25일 이사온 후 슬픈 소식을 들은 3남매는『아빠가 죽었다』고 우는 듯 중얼거리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매부인 윤명기씨는『이번 달엔 가불이라도 해서 우선 2백80달러를 보내겠다는 편지를 26일에 받았는데 이게 웬일이냐』고 조카를 부여안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윤웅렬씨 집>
서울 성동구 금북동 산1(8통10반) 최익환(46)씨 집에 셋방을 얻어 남편이 돈 보내오기만 기다리던 윤웅렬씨의 부인 이월형(30)씨는『이게 웬 말이냐』그의 아들 성진(5)군을 안고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시어머니 백순이(50)씨와 시누이 정숙(22)양과 함께 유일한 가장인 윤씨를 잃은 조그만 셋방은 삽시간에 울음으로 휩싸였다.
지난 13일에 보내온 마지막 편지의『이제 달마다 5백55달러 받으니 생활에 걱정할 것 없다. 이번 달엔 3백50달러를 보내겠다』는 소식에 남몰래 기뻐했다는 이들 가족이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말릴걸』-가족들은 한결같이 후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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