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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함께야!

중앙일보

입력

색색가지 헝겊 조각들을 이어서 만든 ‘조각 이불’은 그 화려하고 포근한 모습 때문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그렇게 대중적이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옛날부터 즐겨 쓰였다고 해요.

이불의 재료가 되는 조각들은 옷을 짓고 남은 천이라든가, 낡은 커튼 등 다양한 ‘쓰임의 기억’ 들을 담고 있지요. 그래서 미국에서 퀼트로 만들어진 조각이불은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 사람의 기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림책 『넌 내 멋진 친구야』 (중앙출판사)의 표지를 보았을 때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이 조각이불처럼 헝겊을 잘라 붙여 그린 색색가지의 테두리입니다. 그 테두리 안에는 고양이와 소녀가 서로를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모습 뒤로, 스냅 사진들이 여러 장 흩어져 있어요. 조각 이불과 사진… ‘기억’을 나타내는 두 가지 물건이 모두 있으니, 이 그림책이 어떤 내용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요.

‘데써’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고양이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 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늙어서 죽을 때까지 소녀와 함께 우정을 나누며 여러 가지 추억들을 만들었어요. 추억은 사람이 무언가와 만나 관계를 맺고 이별하면서 생기는 것들이고, 그 존재가 소중하면 소중할수록 남겨진 기억의 수와 무게는 커지겠지요. 그리고 어쩌면, 이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데써’는 나름대로 정말 좋은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지키면서 사랑을 주고받고 나중에는 그 곁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쳤으니까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이가 많은 요즘에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림책에 담긴 추억, 아름다운 헤어짐
이 그림책은 이렇게 누군가를 만나 정을 나누고 이별하며 추억하는 방식에 대해 고양이와 소녀를 통해 잔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고양이의 죽음은 커다란 사건이라기보다는 삶의 자연스러운 진행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맺음이에요. 그래서 소녀는 ‘데써’가 죽은 후 다시 함께 사랑을 나누며 ‘추억’을 만들 오렌지빛 고양이를 만납니다.

어린이책에서 ‘죽음’은 이렇게 그것을 삶의 또 다른 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려주는 쪽으로 나타나야 할 듯 싶습니다. 아이들은 앞으로도 삶을 오래도록 맛보며 직접 배워가야 하니까요. 그래서인지『우리 할아버지』『거미줄의 추억』 등의 비슷한 테마의 동화에서도 오랜 인생을 살고 평화롭게 마감하는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메시지는 앞에서와 동일하지요.

‘죽음은 완전한 이별이 아니라 우리들이 그들을 기억하는 한 항상 함께 있는 것이다.’ 라고요. 다시 말하면, 죽음은 삶의 정반대가 아니고 삶의 과정이며, 만남과 사랑, 이별(죽음)의 순환이 바로 ‘삶’이라고요. 아이들은 이런 그림책들을 읽으면서 앞으로 겪을 삶을 미리 연습하고 대비하며 마음이 자라게 될 겁니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얘기를 안 할 뻔했군요. 예쁜 천들을 사용해 사진첩을 연상시키는 그림들로, 추억의 조각을 따뜻하게 맞춘 이 작가는 또 다른 작은 이야기들을 슬쩍 감추어 두었습니다. 소녀와 고양이가 재미있게 노는 그림 속에 있는 책들은 아마도 작가가 좋아하는 작품인 듯 해요.

유명한 『장화신은 고양이』와 『크릭터』, 그리고 『백만 마리 고양이』와 『바바 이야기』 입니다. 또, 마지막에 새로운 고양이 진저와 함께 소녀가 보고 있는 앨범 안에는 이 그림책에 나와 있던 스냅 사진 모양의 그림이 그대로 들어 있어요. 아이들과 함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찾아 본다면 큰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이윤주/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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