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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배추 2100원 + 재료값 = 김치 1만2000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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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주부 오연숙(58·경기도 안산)씨는 수십 년째 김장을 거른 적이 없다. 하지만 최근엔 김장을 담그면서도 ‘계속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다. 그는 “배추값이 해마다 널뛰는 것도 문제지만 고춧가루 같은 다른 재료값이 더 부담”이라고 말했다. 오씨는 지난해 12월 김장 때 대형마트 할인 판매를 활용해 배추 20포기를 약 3만원에 샀다. 그러나 고춧가루가 문제였다. 2㎏ 정도를 사는 데 6만원 이상을 줬다. 그는 “차라리 필요할 때마다 김치를 사 먹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배추 파동을 겪으면서 배추값은 ‘MB물가’의 최대 골칫거리가 됐다. 배추값을 잡느라 정부는 ‘배추국장’까지 지정하며 총력전을 폈다. 이 덕분에 2011년엔 배추값이 폭락했고 지난해는 평년보다 소폭 오른 수준에서 가격을 잡았다. 그러나 정작 김장을 담그는 집에선 부담이 별반 줄어들지 않았다. 배추값 잡느라 정작 중요한 완제품인 김치 담그는 비용을 체계적으로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추값이 이상 폭등했던 2010년을 빼고 앞뒤 해의 김장 비용을 비교하면 한계가 명확해진다. 2009년 김장철(11월)의 재래시장 평균 배추값은 20포기(4인가족 기준)에 3만2652원이었다. 2011년 김장철에는 배추값이 2만9071원으로 11% 내렸다. 그러나 총 김장비용은 12만원대에서 18만원대로 오히려 43% 늘었다. 고춧가루와 깐마늘, 굵은 소금 등 양념류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2011년 김장철에 네 식구 김장을 위해 고춧가루(1.86㎏)를 사려면 6만원 이상을 줘야 했다. 2009년에는 2만원 수준이면 살 수 있었다.

 지난해는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배추값은 2011년보다 112%나 올랐다. 그러나 전체 김장 비용은 16% 늘어나는 데 그쳤다.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종 소비품인 김치를 두고 한두 개 품목만을 놓고 물가관리를 해봐야 효과를 내기 어렵다”며 “오히려 시장 왜곡 등 부작용만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적으로 배추값만으론 김장 비용 부담을 낮출 수도 없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마트에서 김장 재료 일체를 샀다면 평균 24만5771원이 들었다.

 이 가운데 배추가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불과했다. 고춧가루가 김장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다. 굴(14%)·소금(5%)·마늘(4%)을 합하면 양념 비중이 전체 김장 비용의 절반에 육박한다. 배추만 들볶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셈이다.

 정부도 뒤늦게 지난해 12월 말 물가관리의 방향을 바꿨다. ‘MB물가’ 를 지정하고 채찍질을 한 지 5년이 다 돼서다. 정부는 김치지수를 만들어 공표하고 물가관리의 초점을 원재료(배추)에서 완제품(김치)으로 바꾸기로 했다.

 지금도 통계청이 소비자물가를 조사할 때 김치 가격을 조사한다. 그러나 이 조사는 완제품 형태로 파는 공장 김치만을 대상으로 해 직접 담그는 가정의 김장 비용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전체의 절반에 이르는 완제품 김치를 사 먹는 가정에서 참고할 만한 가격 지표는 변변치 않았다. 사각지대도 있다. 반가공 형태인 절임배추 수요가 지난해 42% 늘어났지만 유통구조나 가격에 대한 분석은 걸음마 단계다.

 게다가 중국산 김치 완제품 수입은 2005년 11만t에서 2011년 23만t으로 늘어났다. 배추만으론 김장 물가관리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정책이 바뀐 형국이다. 이용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예실장은 “서민 물가를 강조하다 보니 당장 가격이 오르고 눈에 바로 띄는 배추 같은 원재료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름에 ‘식품’ 자를 넣기는 했지만 여전히 작물 중심인 농림수산식품부의 구조도 종합적인 관리에 걸림돌이 됐다. 권승구 동국대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는 “생산부터 소비까지 일관된 관리시스템을 두는 것이 선진국의 추세”라며 “식품의 종류나 생산 방식에 따라 제각각인 식품 관리 체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천일 농식품부 유통정책관은 “지금까지 김장 담그는 가정이 많았기 때문에 품목별 재료 가격에 집중했지만 공장 김치 비중이 커지면서 완제품을 중심으로 한 관리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정부 방침이 서기는 했지만 올 상반기 안에 김치 지수를 발표하기는 어렵다. 지수 만들기가 생각보다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제각각인 김장 스타일을 표준화하기 어렵다. 또 통칭해서 배추라고 부르지만 봄 배추와 김장 배추, 여름에 나오는 고랭지 배추는 쓰임새와 가격이 완전히 다른 상품이기도 하다. 농식품부는 다음 달 중 연구 용역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김치 지수가 생기면 쓰임새는 많다. 소비자는 완제품인 김치 가격의 추이를 보면서 김장을 언제 하는 게 좋을지 가늠할 수 있다. 또 사 먹는 게 나은지, 담그는 게 나은지를 판단할 자료도 볼 수 있게 된다.

 이천일 유통정책관은 “매번 가격 변동을 챙기기 어려운 맞벌이 부부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선 실장은 “상당수 소비자가 주 1회 정도 장을 보는 생활 양식의 변화를 감안해 저장성이 높은 절임이나 무침 상태의 중간 단계 식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김치지수가 자리를 잡으면 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는 금융상품(김치 선물)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승구 교수는 “김치가 종합적인 농산물 물가관리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지에 대한 시금석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배추의 종류 배추는 품종 특성에 따른 분류보다 나오는 시기에 따른 구분이 일반적이다. 3월이 되면 남부 지역의 비닐하우스에서 생산된 시설 봄 배추가 출하된다. 5~6월에는 비닐하우스 밖에서 키운 노지 봄 배추가 시장에 깔린다. 경북 문경·봉화 등이 주요 산지다. 배추는 서늘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7월부터 김장철 전까지는 해발 600m 이상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 바로 고랭지 배추다. 고랭지 배추는 재배 비용이 많이 들어 비싸다. 11~12월에 쓰는 배추는 ‘가을 배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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