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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110주년 특별기획] 가난ㆍ차별 딛고 주인으로

미주중앙

입력

1903 사탕수수밭의 한인들 1903년 1월부터 1905년 7월까지 하와이에 온 한인 노동자는 7800여 명으로, 이들은 대부분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에서 일했다. 한인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 제공]
2013 월스트릿의 한인들 올해로 이민 110주년을 맞는 한인사회는 타민족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 신화를 쓰며 미국사회의 주인으로 거듭났다. 세계 경제의 중심인 맨해튼 월스트릿에서 활동하는 한인 금융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김동희 기자

1903년 1월 13일 새벽, 검붉은 여명을 뚫고 하와이의 호놀룰루항에 도착한 게일릭호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102명의 한국인이 낯선 땅에 첫 발을 내디뎠다. 22일의 대장정 끝에 미국에 온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공식 이민자들이었다. 가난과 망국ㆍ전쟁 때문에 정든 땅을 떠나 신천지를 찾은 선배들로부터 시작된 미주 한인 이민 역사가 올해로 꼭 110년을 맞는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소수민족 중 하나로 평가받는 한인들의 110년은 어땠을까. 본지는 도전과 성취로 상징되는 이민 역사와 앞으로의 과제를 4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1903년 1월 102명을 시작으로 1905년 7월까지 하와이에는 65편의 배를 이용해 7800여 명의 한인 노동자가 도착했다. 이들은 하와이 전역의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에 흩어져 일했다. 당시 일당은 69센트.

1910년을 전후해서는 하와이 이민 제2의 물결이라고 불리는 '사진 신부'들이 대거 몰려왔다. 이들은 한국의 중매쟁이가 건넨 사진만 보고 남편을 찾아 하와이행 배에 몸을 실었다. 이민자들이 가정을 이루자 한인사회는 비로소 공동체를 형성했다.

하와이 노동자들 가운데 2000여 명은 고된 노동을 견디다 못해 샌프란시스코와 LA 등지로 재이주했다. 본토 이민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000여 명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남은 한인들도 하나 둘 농장을 떠나 다른 직종이나 자영업 등으로 옮겨갔다.

◆최초 유학생 유길준=대뉴욕 한인 100년사(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대뉴욕 기념사업회 편찬, 2003년)에 따르면 유학생의 역사는 이민 역사보다 20년이나 빨랐다. 1883년 고종 황제의 외교 사절단 수행원이었던 '서유견문'의 유길준이 뉴욕을 거쳐 매사추세츠주의 더머 아카데미(현 거버너 아카데미)에서 국비로 공부를 시작하면서다. 이후 일제 통치 시절 서재필ㆍ이승만 등이 맨해튼 컬럼비아대 등에서 유학을 한 뒤 해방된 조국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게 된다.

◆65년 이후 본격 이민=반세기 이상 미국인의 관심을 끌지 못한 한인의 미국 이민은 65년부터 시행된 새로운 이민법의 혜택을 통해 크게 늘어났다. 1940년 센서스(50, 60년 자료는 없음) 당시 전국 한인은 8570명에 불과했으나 70년 6만9130명, 80년 35만4593명으로 급증했다.

재외한인사회연구소 민병갑 소장은 "이민법 개정 후 연간 1만~3만6000명의 한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와 한인사회가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70년대 들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한국인들의 집단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몇 십 달러 들고 맨주먹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한 시기였다. 대한항공이 정기 노선을 개설한 것도 72년이었다.

◆뉴욕한인사회 태동=유학생 중심의 뉴욕한인사회는 60년 뉴욕한인회가 창립하면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뉴욕의 한인 비즈니스는 60년대 맨해튼 브로드웨이 가발상에서 시작됐으며, 70년대 중반 이후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청과ㆍ수산ㆍ세탁ㆍ델리ㆍ식당 등으로 다양해졌다.

◆한흑 분쟁으로 큰 고통=90년대를 지나면서 전국의 한인사회는 다른 소수계와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브루클린 처치애브뉴 한흑 갈등(91년)과 LA 4ㆍ29 폭동(92년)이다. LA 폭동은 본래 흑백 갈등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피해자는 한인이었다. 엉뚱하게도 한인들이 분노한 흑인들의 타깃이 됐다. 이후 '나'만이 아닌 '우리'를 생각하고 정치력 신장을 통해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신규 이민 줄고 2ㆍ3세 늘어=센서스국에 따르면 2000년 122만8427명이었던 한인(혼혈 포함)은 2010년 170만6822명으로 39%나 늘었다. 신규 이민이 주춤하고 있지만 한인 2ㆍ3세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 전국의 한인 업체 수도 19만2509개로, 매출만 786억3361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정계는 물론 재계와 문화계 등 다양한 한인 리더들이 곳곳에 포진해 코리안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더불어 복수국적이 허용되고 재외선거권이 주어지는 등 한국과의 거리도 그만큼 가까워졌다.

민병갑 소장은 "2000년대 이후 한인 이민의 80%는 유학ㆍ취업 등으로 온 일시체류자들이 영구 정착하는 형태로 바뀌었다"며 "특히 과거에는 한인사회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미국에 동화되면서 한국과의 교류도 활발해지는 바람직한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이종행ㆍ서한서 기자
kyjh69@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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