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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수시전형으로 서울대 체육교육과 입학하는 신재용·이정호군

중앙일보

입력

수시일반전형으로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나란히 합격한 신재용(왼쪽)군과 이정호군. 두 사람은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고 기본에 충실했던 게 공부도 운동도 잘 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는 세간의 잘못된 선입견을 깨고 운동선수도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한 학생이 있다. 유도 청소년대표로 국제대회 은메달까지 딴 신재용(익산 원광고3)군과 올해 청룡기 고교야구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이정호(서울 덕수고 3)군이다.

이들은 2013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나란히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했다. 특기자 전형이 아닌 일반 수시전형을 통해서다. 보통 운동에 재능을 보이는 학생은 공부를 포기한 채 체육 특기생으로 운동에 전념하지만 두 사람은 공부도, 운동도 포기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전지훈련 갈 때도 문제집 들고 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니까 운동부는 수업을 4교시까지 하더라고요. 공부를 거의 못했죠. 그런데 문득 제가 유도부라는 이유로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공부를 못해도 된다고 인식하는 걸 깨달았어요. 수행평가 과제를 나름 열심히 해도 이런 인식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못 받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언했죠. 공부해서 대학 가겠다고.”

 신재용군은 유도부 감독에게도 자신의 결심을 전하고 수업을 6교시까지 모두 받았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원 한 번 다녀본 적 없는 신군에게 학기 초 빠진 수업 공백은 큰 산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책을 즐겨 읽어 특히 국어를 잘했지만 처음 본 모의고사에서 언어 8등급의 성적표를 받아 들고는 큰 충격에 빠졌다.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이건 아니다’싶었죠. 그 때 고교 축구선수로 활동하며 서울대에 진학한 김현 선수 기사를 봤어요. 나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서울대에 가겠다고 목표를 정했죠.”

 신군은 자신의 의지가 약해지지 않도록 방법을 찾았다. 실제로 하루에 영어 단어를 30개씩 외우기로 목표를 정해 놓은 뒤엔 점심시간 마다 영어 교사를 찾아가 단어 시험을 보는 방식을 택했다. 혼자 외우는 것보다 실천을 더 잘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힘들었지만 결국 성적이 오르더라고요. 운동이나 공부나 항상 목표의식이 뚜렷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 것 같아요. 일단 계획을 세우면 작은 것부터 하나씩 이뤄가는 게 중요해요.”

 야구선수로 활약한 이정호군도 서울대라는 목표를 세운 뒤 공부에 더 집중했다.

 “중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는데 ‘운동선수는 공부 못한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었어요.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그래서 수업을 누구보다 열심히 들었어요. 제겐 수업에 배우는 내용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셈이었으니까요. 중학교 땐 수업시간에 잠을 잔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였어요.”

 이군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수업에 충실히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이군이 1학년 땐 야구 주말리그제 도입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야구부 학생들은 오전까지만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이군은 오후 4시까지 모두 수업을 듣고 훈련에 임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공부시간을 채우기 위해 야간훈련이 끝난 뒤엔 새벽까지 문제집을 풀었다. 방학을 맞아 전지훈련을 갈 때도 문제집을 여러 권 가지고 가 틈틈이 문제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확고한 목표를 세운 다는 건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 같아요. 주변의 우려나 걱정이 있을 때도 반드시 해내겠다는 결심을 되새길 수도 있고요.”

쉬는 시간, 식사 시간 ‘쪽시간’ 활용

신재용군은 지난해 열린 체코국제청소년유도대회와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모두 2위를 기록하고, 10월 전국체전에선 1위를 차지했을 만큼 유도 유망주다. 이정호군 역시 지난해 평균 타율이 3할 1푼이나 되는 강타자다. 특히 청룡기 대회에선 5할을 기록하며 팀이 1위 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그만큼 많은 훈련시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기본기 다지기’다. 신군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따라가기 힘들었던 수학과 영어의 기본 개념을 익히고 기초문제들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EBS 인터넷 강의를 보며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문제 유형의 흐름을 익혔다. 특히 수능이 EBS와 연계된 문제가 많아 효과를 톡톡히 봤다. 내신은 교과서를 활용했다. 수업시간에 중요하다고 꼽히는 부분들은 모두 체크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3~4번 읽으며 개념을 정리했다.

 그는 수업 전 새벽 운동, 방과후 오후 운동, 저녁식사 후 야간 운동 등 많은 운동량을 소화해야 했다. 따라서 쉬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 등 ‘쪽시간’도 잘 활용하려 애썼다.

 “야간 운동이 끝난 저녁 9시부터 점호를 하는 10시까지 책을 읽거나 영어 단어를 외우는 시간으로 활용했어요. 2학년 때부턴 이 시간에 책을 읽으며 한 달에 한번씩 익산시 학생들이 모이는 독서 토론 동아리 활동도 했죠.”

 이정호군 역시 운동을 시작하면서 흔들렸던 성적을 기본기로 극복했다.

 “중학교 때 상위권을 유지하던 내신이 고등학교 초반 많이 떨어졌어요. 일주일 내내 거의 수업을 못 들었거든요. 덕수고는 야구명문이라 주전선수로 활약하려면 그만큼 운동을 열심히 해야 했죠.”

 이군은 1학년 때 수업을 못 들어 계열석차가 80명 중 60등까지 떨어졌다.

 “암기과목이 아닌 영어나 수학은 기본이 없으면 수업 따라가기가 어려워요. 고2 올라가는 겨울 방학 때 기본을 다지는 데 주력했어요. 중학교 때 문제들부터 다시 풀었죠.”

 그는 수업시간에 받았던 프린트와 교과서들도 다시 살펴보며 개념을 정리했다. 2학년으로 진학한 뒤 주말리그제가 도입돼 수업에 참여하면서는 수업 시간에 집중했다. 그 결과 2학년 땐 계열석차 9등까지 올라갔다.

 신군과 이군은 더 많은 운동선수들이 공부를 병행할 수 있도록 체육정책이 수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동선수가 부상을 심하게 당하면 운동을 그만 둘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운동만 한 학생들은 그 순간 장래가 막막해요. 또 운동을 잘 하는 것이 그 학생의 장점들 중 하나가 돼야지 수업 선택권을 침해받는 요소가 되면 안돼요. 그나마 야구와 축구는 주말 리그제가 도입돼 수업 참여가 가능하지만 그외 종목들은 여전히 운동에만 내몰리고 있어요. 운동부 학생들이 운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공부를 포기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심영주 기자 yjshim@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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