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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본위 근대 계몽사상 참혹한 환경파괴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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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저명한 환경운동 이론가인 아비히 전 에센대 교수의 『자연을 위한 항거』는 환경문제를 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보기 드문 저작이다.

11년 전 독일에서 출간된 이후 환경운동의 주요한 이론서 역할을 해 온 이 책은 환경파괴의 참혹한 결과가 대체로 알려졌음에도 파괴적 행동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인용될 책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동양 전통철학에서 환경친화적 세계관을 끌어내려는 움직임과 별도로, 오히려 그보다 앞서 서양철학의 입장에서 환경문제를 성찰한다는 점에서 현대 환경철학의 변화과정도 읽을 수 있게 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들이 환경정책을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더욱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원인은 "미완성의 근대 계몽정신에 사로잡힌 채 그릇된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 개념 자체도 왜곡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를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환경'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볼 때 모든 생명체는 각각 고유의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만의 독단적 생각으로 세계를 재단해선 안되고 "세상은 다른 생명체들의 고유한 세계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자연을 위한 항거'는 인간의 잃어버린 감성을 되살리기 위해 사고의 전환을 이루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나아가 그것은 자연에 대한 책임을 인식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가를 인간끼리의 사회적 계약단위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안의 국가'로 변화시키기 위한 비폭력적 투쟁을 함축한다.

저자는 이 책을 고(故) 최재현 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바친다고 적고 있다. 최교수는 한국 환경운동의 초창기부터 최열(현재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씨와 함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0년 전 이 책의 번역에 착수한 최교수가 갑작스레 운명을 달리 하자 이 책의 번역도 우여곡절을 겪는다.

마땅한 역자를 찾지 못하고 여러 전문가의 손을 거치다 최교수와 독일에서 같이 공부한 후배 박명선(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에게서 빛을 보게 되었다.

최교수의 절친한 친구이고 그의 사후 출판작업에 관여한 안병욱(가톨릭대 사학과) 교수는 "일반 대중에게 현학적 주제를 평이하면서도 풍성한 지혜를 담아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비견되는 이 책이 최재현 교수의 10주기에 환경전문출판사 도요새에서 출간돼 더욱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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