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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일치의 비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정당정치에 대한 한가지 오해가 있다. 정부나 여당이 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일단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 소수의 버릇이고 이 버릇이 시정되지 않으면 건전한 민주정치가 안 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얼른 생각하기엔 그럴듯한 생각이다. 아무리 권력욕에 불타는 여기로서니 매양 사리와 국가이익을 해치는 일만 골라서 할 리 없고 가다보면 잘하는 일도 있다. 그때엔 여가 하는 일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헐뜯지 말고 큰 아량으로 성원을 해주는 것이 건전 야당의 자세이다-는 이론을 한번 반성해 보자.
우선 국회의원 한사람 한사람이 정견과 이익관계를 서로 달리하고 그 위에 정당과 정파의 대립이 군림해서 이루어지는 의정의 현실에서 정말 만장일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법안이며 안건이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이고, 얼마나 많을 수 있을까. 그 다음 무슨 일이든지 만장일치로 가결한 것이라야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 되는가. 답은 분명하다. 만장일치로 처리될 수 있는 일은 실제로 극소할 것이고, 단 한 표의 차로 가결 또는 부결되었더라도 그 결정은 다수국민, 즉 전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이고, 압도적 다수로 결정되었을 때와 똑같은 효력을 갖는다. 만장일치라는 것은 민주사회에서는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불건전한 것이다.
물론 대국적인 정세판단과 슬기로운 타협으로 만장일치가 이루어진다면 경사스러운 일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아도 국내문제가 만장일치로 결정되는 일이 거의 전무한데 비해서, 외교문제에 대해서만은 만장일치, 또는 그에 가까운 여·야 일치의 결정이 내리는 수가 있다. 월남전을 에워싼 요즘의 미국 국회의 사정은 자못 착잡하지만, 외교문제에 대해서만은 국론을 양분하지 말자는 소위「바이·파티전」태세가 하나의 전통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정략에 어두운 시정인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왜 우리는 모처럼 만장일치로 합의를 본 것은 흐지부지되고, 외교문제는 번번이 퇴장과 강경이 맞서다가 단독으로 처리되고, 오히려 국내 문제가 화기에 찬 만장일치로 막을 내리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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