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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겨자 먹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나를 뽑으면 나라는 영광과 위신을 얻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라는 내란의 도가니에 빠지고 만다』는 식의 으름장을 놓는 것은「드·골」의 수법. 정책이니 정견이니 하는 것을 구차스럽게 따질 것 없이「드·골」개인에 대한 「위」와「농」을 묻는다. 이번 영국의 선거도 결국「윌슨」과「히드」의 두 사람 중 누가 더 일을 잘 하겠느냐 하는 국민의 판단으로 V가 갈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과거 5백여일 동안 3표 내지 단 한 표의 다수로 정권을 유지해 온「윌슨」이 국민에게 신임을 물은 태도와, 「드·골」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어떤 특정한 정당이 아니라 전「프랑스」의 운명을 혼자서 지고 나서는「드·골」과는 달리「윌슨」은 한 정당의 영도자이다. 그가 선거에 졌다고 해서 영국이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윌슨」의 요구는 단지 불과 한두 표의 다수로써는 노동당의 소신대로 나라 일을 할 수 없으니, 이왕 정권을 맡길 테면 한 번 큰마음 먹고 표를 듬뿍 찍어 달라는 것뿐이었다. 자기 개인에 대한 인기를 물은 것이 아니고, 노동당의 고원을 털어놓고 노동당의 정책과 솜씨에 대한 신임을 묻은 것이다. 「윌슨」의 이러한 저자세는 영국인들의 두 가지 심리에「어필」했다. 하나는「페어·플레이」의 정신이고, 또 하나는 오랫동안 역경에서 고생했으니 한번 큼직한 꽃다발을 안겨 주자는 일종의 감상적 선심이다.
워낙 인내성이 많은 영국인이지만 그들에게 무작정 내핍을 요구한다는 것은 반드시 현명한 득표책이 못 된다. 1951년의 패북의 교훈이 그것이다. 그러나 「윌슨」은 이번에도 내핍과 인내를 요구했고 「언짢은 일」과 「인기 없는 정책」을 다짐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다. 나라의 처지가 국민의 내핍과 인내 없이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을 납득하기만 하면 어려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 주는 매정스러운 사람을 오히려 따르는 것이 영국인들의 미덕이다. 선거가 끝나자 곧 「타임즈」를 위시한 모든 신문이 이제 마음놓고 「터프」한 정책을 실천해 보라고 성원하고 나섰다. 세상엔 웃으면서 먹는 겨자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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