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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단에 춤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민주사회의 신문은 어느 누구의 장단에 춤을 추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여야 야, 정부와 국민 사이에 자리잡고 시시비비를 가리다 보면 어느 한쪽의 구미에도 맞지 않는 결과가 되어 한편에선 야당지로 지목 받고, 다른 한편에선 「사꾸라」로 낙인찍히기 일쑤이다. 그러나 가다 보면, 「야당지」니 「사꾸라」니 하는 야속한 비난이 나올 수 없는 거국적인 「이슈」가 생긴다. 정부가 우리 전관수역을 범한 일본 어선을 잡았을 때가 바로 그랬다.
일본 배를 잡기가 무섭게 일본 어부들에게서 범법사실을 자백 받고 경비대원에게 휘둘렀다는 식도를 압수하고 잡은 고기는 팔아서 돈으로 바꾸고 하는 전격적 조치를 취했을 때 모두들 10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잡힌 어부들은 국내법으로 엄중히 다스리겠다고 내외에 선언한 양 내무는 드물게 듣는 흥겨운 장단을 울려 준 셈이었고, 누구를 두둔해서가 아니라, 진정 고마운 처사여서 언론과 온 국민이 함께 춤추어 화합했다. 일본 정부와 신문이 우리의 처사를 너무하다느니 불법이라느니 하고 철없는 소리를 하는 것을 듣다못해 분수대도 그들의 억지와 몰염치에 일침을 가한 일이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고기 도둑들을 놓아주겠다는 것은 어찌된 셈인가. 이것은 또 무슨 장단인가. 하필이면 일본 측이 범법사실을 시인하기에 이르러서, 종래의 흥겨운 장단을 졸지에 거두고, 「외교」니 「정치적 고려」니 하는 색다른 장단을 칠 것은 무엇인가.
이런 경우를 두고, 옛 성현도 백성에겐 알리지 말고 따르게 하면 그만 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 백성은 장단의 내력과 정당성을 납득할 때 비로소 따르고 춤을 춘다. 잡아 놓은 도둑은 풀어 주면서 앞으로 우리 집안을 터는 도둑은 한 길에까지 쫓아 나가서 잡아 치우겠다는 것은 전연 파흥의 장단이다. 「굴욕」이니 「저자세」니 하는 끔찍한 말은 않겠다.
그러나 「정치적」고려와 조치는 과연 국민의 여망과 여론과 명백한 사유에 우선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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