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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12조 vs 민간 8000억 진실?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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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을 위해 지금까지 12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민간은 다 합해봐야 고작 8000억원 정도를 부담했을 뿐이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기업에 일방적으로 책임과 부담을 강요하는 지금 상황은 잘못된 겁니다. 코레일은 앞으로 한 푼의 자금도 집행하지 않을 겁니다.

최근 만난 코레일 대변인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면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에 더 이상 돈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지난해 12 12일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추진 회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이하 드림허브) 25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에 실패한 후 코레일은 더욱 강경해졌습니다.

기존에 주로 2대 주주인 롯데관광개발의 무능을 문제 삼던 태도에서 이젠 다른 출자사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드림허브의 민간 출자사들이 3조원 자본금 증자안 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 푼의 추가 자금도 집행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드림허브는 30개 출자사로 구성돼 있습니다. 코레일은 전체 지분의 25%를 가진 1대 주주며, 롯데관광개발은 15.1%의 지분으로 2대 주주입니다.

삼성그룹(삼성물산·생명·화재·호텔신라·에버랜드·SDS ) 14.5%의 지분을 가졌고, KB자산운용(10%)·푸르덴셜부동산투자(7.7%)·미래에셋자산운용(4.9%) 등 재무적 투자자와 GS건설(2%)·현대산업개발(2%)·금호산업(2%) 등의 건설사가 투자하고 있습니다.

민간 출자사가 코레일 단물만 빨아먹는다?

그런데 드림허브 출자사들이 마련한 1조원의 자본금은 현재 바닥이 났습니다. 사업이 지연되고 추가 자본금 마련 계획이 무산되면서죠.

시공비를 내지 못해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 공사인 토지작업은 중단됐고, 설계비는 물론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행 이자만 겨우 해결해 목숨만 부지해 사실상 파산상태입니다.

드림허브는 이사회를 하루라도 빨리 열어 25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을 다시 추진하든 아니면 자본금 증자를 결정하든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디폴트(지불유예) 상태로 돌입해 청산 절차에 들어갈지 모를 상황입니다.

하지만 드림허브 이사회 갈등은 더 깊어지고 있고, 긴급히 열어야 할 이사회는 아직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은 코레일이 최근 제기하기 시작한 소위 ‘빨대론’입니다.

코레일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12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지원을 아까지 않고 있는데 다 합쳐봐야 8000억원 조금 넘는 자금을 투자한 민간 출자사들이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해 사업이 잘 안되고 있다는 논리입니다.

민간업체들이 공기업 코레일이 벌여놓은 판에 빨대만 꽂고 들어가 이익금을 빼먹으려 한다는 주장이죠.

코레일이 최근 언론에 뿌리는 자료에 따르면 근거가 없는 건 아닙니다.

코레일 자료에 따르면 코레일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 지원한 돈은 모두 122603억원입니다. 반면 민간은 롯데관광개발(1747억원), 삼성물산(1423억원) 등 모두 합해야 8531억원에 불과합니다.

그 수치대로라면 코레일은 전체 드림허브 자금의 93.5%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이는 29개 전체 출자사의 14배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코레일은 민간 출자사가 자금 조달 등 사업추진을 위한 동업자 정신을 상실했고, 자사 이윤만을 추구하는 태도로 일관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코레일은 더 이상 단물을 빨릴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CB발행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디폴트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코레일 장진복 대변인은 “민간 출자사에 드림허브 협약서 정신에 입각한 시설물 매입확약, 자금조달, 신규 투자자 유치 등에 적극 나서라고 요구할 것”이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한 푼의 자본금도 집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토지대금 연기가 5조원 지원? ‘글쎄’

코레일의 이런 태도에 민간 출자사들은 무척 당황하고 있습니다. 민간 업체들은 일단 코레일이 제시한 자료를 부정합니다.

민간 출자사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민간이 보기에 코레일이 현재까지 투자한 금액은 12조원대가 아니라 7045억원입니다. 드림허브 출자금 2500억원, 용산역세권개발(AMC) 출자금 9억원, 1 CB발행 25%(376억원), 랜드마크 빌딩 계약금 4161억원이 전부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코레일 투자금액에 대한 코레일 자신의 주장(122603억원)과 민간의 주장(7045억원)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코레일은 ‘토지 대금 연기’나 ‘토지매매 스케줄 변경’ 등에 따른 ‘자금 유동성 지원’과 사업확약서 같은 보증을 통한 ‘신용보강’ 등을 모두 지원 금액에 포함시켰습니다.

하지만 민간은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토지 대금 연기를 통한 지원을 예로 들겠습니다.

코레일은 토지매매 스케줄 변경(2009 1차 협약)과 토지대금 연기(2011년 사업정상화 방안)를 통해 47000여억원을 지원했다고 주장합니다. 땅값 지급시기를 사업 준공시점으로 연기해 사실상 5조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민간이 보기에 이건 터무니없는 해석입니다. 코레일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건설사 지급보증이 막힌 상황에서 땅값을 받을 수 없자 돈을 제대로 받기 위해 사업적 판단으로 결정한 것이며, 그만큼 이자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복리로 계산해 민간이 부담하는 이자만 13000억원 늘어났다는 겁니다.

한 출자사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한 건설사가 3억원짜리 미분양 아파트를 판다고 해봅시다. 계약조건이 계약금 3000만원에 2억원의 중도금을 입주할 때 잔금과 함께 내는 것 이라고 가정해보죠. 이걸 건설사가 계약자에게 2억원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나요? 무이자도 아니면서요.

신용보강 지원 24000억원 주장에 민간 ‘어이없다’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자산담보부어음(ABCP) 발행에 신용보강을 제공해 24000억원을 지원했다는 부분도 민간의 시각은 180도 다릅니다.

코레일이 지원해줬다는 신용보강은 무엇일까요. 사업협약서 대로 약속을 지킨다는 ‘반환확약서’를 써 준 것입니다. 사업협약서에는 사업 무산시 코레일은 토지 전체를 돌려받는 대신 금융권에 토지대금(ABS, ABCP 원금) 24000억원을 돌려준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코레일은 사업이 망가지면 돈을 반납해야 하지만 땅은 돌려받습니다코레일은 토지대금을 반환하지만 땅을 돌려 받아 나중에 다시 팔거나 사업을 할 수 있으니 별로 손해날 일은 없다는 게 민간의 해석입니다.

민간 출자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원을 해 준다는 것은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거나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등 리스크를 떠안는 것인데 코레일은 어떤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땅을 돌려 받으니 손해날 일이 없을 겁니다.

그는 이어 민간 출자사가 떠안는 부담에 대해 꽤 길게 설명했습니다.

“지금 용산 부지의 주인은 코레일이 아니라 드림허브입니다. 드림허브가 24000억원짜리 담보대출을 받고 이자도 내고 있습니다. 사업무산이 되면 코레일은 땅을 찾아가지만 민간 출자사들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24000억원의 지원은 민간출자사가 75% 지분을 갖고 있는 드림허브가 제공한 것이지 코레일 혼자 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코레일이 선매입한 랜드마크 빌딩의 매출채권 유동화 자금(26000억원)에 대해서도 코레일과 민간의 해석이 엇갈립니다. 코레일은 자신이 지원한 자금이라고 보지만 민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돈은 코레일의 ‘잔금지급확약서’와 함께 시공권을 갖고 있는 삼성물산의 ‘책임준공 확약서’를 통해 대출받는 겁니다.

이 대출이 문제가 됐을 때 부담은 누가 더 클까요? 민간의 해석은 책임준공 확약을 해준 삼성물산측이라고 봅니다. 삼성물산은 어떤 경우에도 랜드마크빌딩을 완공해야 합니다. 이 공사비 부담이 15000억원이나 됩니다.

반면, 코레일은 건물이 다 지어지면 잔금지급확약서대로 잔금을 내고 구입하면 됩니다. 국가적 랜드마크가 될 빌딩을 실물로 사는 것입니다.매각차익을 염두에 둔 일종의 투자행위라는 게 민간의 해석입니다.

한 출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코레일의 랜드마크빌딩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사업에 대한 자금 지원이라고 인정한다면 삼성물산의 책임준공 부담도 민간출자사의 지원입니다. 사업이 잘못되든 어떻든 수조원 규모의 공사비가 필요한 책임 준공을 약속했으니 말입니다. 이번 사업에서 시공사들이 책임준공 리스크로 떠안아야 할 공사물량은 모두 106000억원입니다.

▲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주체인 드림허브의 출자사들이 갈등을 일으키며 사업추진을 중단하자 개발 지역인 서울 용산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사업 추진을 계속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놓고 찬반투표를 해야 한다는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사업 파산 피해, 코레일과 민간 중 어디가 클까?

이런 논란은 결국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잘 안 돌아갈 경우 어느 쪽 피해가 더 클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진짜 피해가 큰 쪽이 사업이 정상화하기를 절실히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전체 사업비 부담의 93%를 코레일이 지고 있고, 민간 출자사는 그저 ‘빨대’만 꽂고 있다는 코레일의 판단이 맞는 것이라면 사업이 중단돼도 민간 출자사들은 큰 피해가 없을 겁니다.

반면 지금까지 12조원 이상을 지원한 코레일의 피해는 엄청나겠죠.

그런데 민간에선 자신들의 피해가 더 크기 때문에 사업 추진이 더 절실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사업이 중단됐다고 합시다. 코레일은 환매권을 발동해 유일한 실물자산인 땅을 돌려받습니다. 그것도 감정평가액이 38000억원(장부가 8000억원)까지 오른 금싸라기 땅입니다.

물론 반환 확약에 따라 24000여억원의 토지대금을 돌려줘야 합니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개발하면 되니까 나중에라도 손해를 회복할 수 있거나 잘 되면 돈을 벌 수도 있겠죠.

민간 출자사들은 어떨까요? 사업이 중단되면 남는 게 없습니다. 귀책사유를 놓고 코레일과 지루한 법정싸움에 돌입할 것입니다. 이기면 최소한 자본금은 건질 수 있겠죠. 지면 자본금은 물론 5년 넘게 사업을 추진한 데 따른 기회비용까지 모두 날립니다.

코레일 예상대로 사업이 5조원 정도의 적자(분양 수익 27조원)로 마무리되면 어떨까요?

민간 출자사의 해석에 따르면 코레일은 손해 볼게 별로 없습니다. 분양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24500억원의 토지대금을 먼저 받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 받은 것까지 포함하면 56000억원의 땅값을 확보하게 되는 겁니다. 준공 1년 전 공시지가(26200억원) 2배가 넘는 땅값을 챙기는 거죠.

민간 출자사들은 어떻게 될까요? 큰 손해가 불가피합니다. 일단 모두 자본금은 한 푼도 못건집니다. 시공권을 목적으로 들어온 건설사는 사업이익을 챙겼으니 조금 낫지만, 투자수익만 보고 뛰어든 FI(재무투자자)들은 아무 것도 건져갈 게 없습니다.

2대 주주인 롯데관광개발은 처참합니다. 자본금 55억원짜리 회사가 2000억원에 육박하는 무리한 투자를 하고 10년을 기다렸는데 자본금은 고사하고 아무런 개발이익도 못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명분싸움으로 확대된 용산개발…소송전 예고

이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코레일과 나머지 출자사간 명분 싸움으로 확대되는 듯 보입니다. 코레일은 공기업으로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에 계속 돈을 대는 것은 국민의 세금을 민간에 빼앗기는 것으로 보고 자금 공급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코레일의 향후 방향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주도록 대통령직 인수위에 사업 경위를 보고할 것이라고 하네요.

민간 출자사들은 사업이 파산할 때를 대비한 피해 규모, 소송 계획 등을 자체적으로 수립하고 있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정말 파국을 눈앞에 둔 것일까요? 현재까진 희망적인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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