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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박근혜 당선인과 계사년(癸巳年)의 동북아 정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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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키티데스의 역사관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임진년이 물러가고 계사년의 새해가 밝았다. 작년은 세계 정치의 해라고 할 정도로 60개국의 선거가 마무리되고 지도자가 교체되었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6자회담의 주역인 한국을 포함한 5개국의 지도자가 바뀌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되었다. 6개국 중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나중에 지도자가 바뀐 곳이 한반도이다. 북한의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 사망하였으니 2012년도로 볼 때 김정은 제1비서가 가장 먼저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한국의 선거가 지난 12월19일이었으므로 박근혜 당선인이 60개국 중 가장 뒤에 결정된 셈이다.

일본의 경우 중의원 임기가 2013년 8월이므로 노다 야스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지 않았다면 6개국 중 2012년도에 바뀌지 않은 유일한 지도자가 일본 총리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노다 총리는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증세법안 통과를 위해 ‘가까운 시일 내 중의원 해산’을 약속하였고 그 약속이행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야당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결국 중의원을 해산하였다. 일본은 12월16일 총선을 실시하여 아베 신조(安倍晉三)가 이끄는 자민당의 압승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되었다. 우연히도 북한을 포함한 한중일 새 지도자가 유명 정치인 2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 싼 지도자가 확정되면서 지정학적 격동기를 맞이한 동북아시아의 21세기 그레이트 게임의 메인 플레이어가 결정된 셈이다. 정치적 현실주의자의 비조라고 볼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티데스(BC465-BC400)는 기원전 5세기에 일어난 해양세력 아테나와 기존의 패권국 스파르타와의 패권투쟁을 그린‘펠로폰네스전쟁’저서의 서문에서 국가 간의 관계는 신(神)의 개입이나 정의보다 패권(군사력)의 기반 하에 이루어진다는 과학적 역사관을 역설하였다.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플레이어가 된 박근혜 당선인은 이 지역에 불고 있는 패권교체의 바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계사년 첫날에 박 당선인이 만나야 하는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전망해 본다.

시진핑 총서기의 중국
지난 해 11월 6일부터 시작된 제18차 중국공산당 대표자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정치국상무위원의 총서기 선출을 위시하여 이른 바 “차이나 세븐“으로 불리는 7인의 지도자가 탄생하였다. 중국은 칠상팔하(七上八下)의 원칙에 따라 정치국 상무위원 모두가 67세 이하이나 시진핑과 리커창(李克强)을 제외하고는 모두 60대 중반으로 5년 후면 68세 이상으로 연임이 불가능하다. 새로운 정치국상무위원들은 문화 대혁명 시 하방(下放)경험이 있는 지식청년(下放知靑) 출신에 지방행정에 잔뼈가 굵은 노련한 행정가들로 중국의 향후 5년을 짊어지고 나가기에 손색이 없다.

특히 시진핑의 총서기 취임 후의 탈 권위 행보는 중국 국내외의 환영을 받고 있다. 과거의 제왕적 지도자에서 서민의 눈높이 맞추어 중국을 경영하려는 새로운 모습은 그가 내세우고 있는 부패척결의 의지와도 관련된다고 보고 있다. 중국이 시진핑 체제 출범으로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패배에 따른 ‘피해의식’에서‘중화민족부흥’으로 돌아가는 전환점이 되는 이 때 반부패 드라이브가 어느 때 보다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연임과 관련 2기 오바마 정권과 G2의 한축으로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책임져야 한다. 얼마 전 미국이 그리스에 지원하는 자금에 대해 그리스 정부가 미국에 고마움을 표시하자 정작 사의를 받을 나라는 중국이라고 했다는 조크 아닌 조크가 있었다. 이제 경제는 물론이고 모든 분야에서 중국이 끼이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 2차 대전 직후 유럽이 전쟁의 폐허에서 복구하기 위해 많은 자금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갔고 그것이 기반이 되어 미국은 IMF라든지 IBRD를 만들어 전후 50년간 세계금융을 지배했다. 지금 중국이 유로 존의 경제를 지원하는 자금 투입을 계속한다면 향후 50년간 국제금융질서는 중국에 의해 만들어 질지 모른다.

시진핑의 중국은 미국과는 갈등과 협조가 계속되겠지만 협조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중미간의 관계는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동상을 강조하면 협조가 필요하고 이몽을 강조하면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또한 중미간은 오월동주처럼 서로 껄끄러운 상대가 한 배를 탄 것과 같다. 배안에서 서로 싸우면 배가 뒤집혀져 서로 물에 빠지게 된다. 일단 한 배를 탄 이상 바다를 같이 건너 갈 수 있도록 협력(同舟共濟)하지 않을 수 없다. 시진핑의 중국은 전쟁에 의한 패권교체라는 투키티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패권국과 도전국간의 평화로운 협조공존관계인‘신형대국관계’를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른바 G2보다 협력(cooperation)과 조정(coordination)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형태의 대국관계를 만들어 가는 “C2의 시대”를 의미한다.

시진핑의 한반도 정책은 후진타오(胡錦濤)시대와 비해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보다 한반도 안정에 우선을 둘 것이다. 북한과는 北ㆍ中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1961.7.5)조약이 체결되어 있다. 일부 학자는 북한이 중국의 짐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중국의 전략적인 자산으로 평가하는 학자도 많다. 한국과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으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발전하였지만 금년 중에 예상되는 박근혜 당선인의 방중은 한중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개연성이 높다. 일본과의 관계는 계사년의 한 해가 고비가 되리라 본다. 지난 해 총선에서 3년 3개월 만에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한 자민당은 대중 강경정책을 주장하는 보수 우익성향이다.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집권한 아베 총리는 댜오위다오(釣魚島) 즉 센카쿠 열도 문제에 대해 민주당보다 강경적인 대응이 예상된다. 따라서 중일 양국은 댜오위다오를 사이에 두고 열전(熱戰)의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겠지만 외교적 냉전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

아베 총리의 일본정세
2009년 8월 총선에서 자민당의 55년 체제가 붕괴되고 민주당이 집권하였다. 민주당은 3년여의 집권에 3명의 총리를 배출하면서 국내외 문제 처리에 미숙함을 보여 국민의 외면을 받아 단명 정권으로 끝났다. 민주당이 실권한 이유는 일본 국민들의‘바꾸어 보자 잃어버린 20년!’라는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데 있다. 경제는 여전히 어렵고 대외관계는 미숙하였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로 하토야마(鳩山 由紀夫) 총리는 미국과의 관계악화를 가져왔고 간(菅直人)총리는 2011년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의 대처 불실, 노다총리는 우경화 자민당을 흉내 내면서 중국과 한국에 대한 근린 외교에 실패하였다.총리 경험이 있는 아베 신조의 자민당이 과반수를 크게 상회하는 중의원 당선으로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이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판단했는지 모른다. 또 하나는 취약한 일본 보다 강한 일본을 원한 결과로 보기도 한다. 과거 역사에서 보면 일본은 위기에 강하고 위기를 돌파하는 저력이 있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아베 총리는 금년 7월의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른 변화가 예상되지만 과격 보수화 추세의 일본 신정권에 대한 미국의 안정관리 의지가 전달되면 국내외 제반 문제를 유연성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풀어 나갈 것으로 본다.

제2기 오바마의 미국
‘바보! 문제는 경제야’라고 경제문제를 중시하는 미국 국민들은 지난 4년간 오바마 정권의 경제 성적표가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4년을 맡겼다. 중국의 부상과 관련하여 아시아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국익을 위해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정책을 펴는 오바마 이외의 대안이 없어 보였다.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유년생활을 보내 스스로 태평양 대통령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오바마는 이 지역에서 미국과 미국의 우방국 이익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오랜 도광양회의 정책에서 벗어나 유소작위의 실력행사에 주변국이 긴장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미일동맹을 아시아 태평양 안보의 주춧돌(corner stone)이라 부르고 한미동맹을 연결고리(linchpin)로 규정하면서 안보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이는 한중일경제가 계속 발전하여 미국 대외 무역의 아시아 태평양 비중이 이미 유럽 비중을 추월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고 본다. 2001년 9.11 테러에 대한 반작용으로 알카이다의 빈 라덴 제거와 테러 방지를 위해 이락 아프가니스탄등 중동에서의 미국은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하였다. 이제 미국은 중동에서 철수하여 다시 아시아 태평양으로 돌아오고 있다. 미국은 시진핑 등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가 실용적이고 미국을 잘 이해하고 갈등보다 협력의 틀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과거 유럽 대륙에서 독일의 부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1차 및 2차 세계대전을 피하지 못했던 영국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푸틴의 러시아 동방정책
제2차 세계대전이후의 얄타체제하에서는 러시아(구소련)은 미국과 함께 세계를 공동 관리하는 G2 국가였으나 1991년 구소련의 붕괴 후는 2류 국가로 강등되어 동아시아지역에 대한 영향력도 감소되었다. 그러나 부틴 대통령의 등장으로 러시아는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지난해 9월8-9일간 러시아의 극동 브라디보스톡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된 APEC정상회의를 통해 부틴 대통령은 동북아시아에 재진입하려는 동방정책을 펴고 있다. 이른 바 러시아판 ‘아시아 중시 (pivot to Asia)’정책이다. 러시아는 일본과의 영토분쟁이 걸려 있는 쿠릴열도 문제 해결에 의욕을 가지고 있다. 노다 총리가 국회를 해산하지 않았다면 금년 1월에 러시아를 방문하려고 했던 것도 이러한 러시아와 일본과의 관계 심화를 위한 것이었다. 한반도 가스관 연결사업 등 극동 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러시아의 동방정책은 한반도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국
한국의 국내정치 전문가들은 2011년 10월 안철수 바람이 무당파의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만들어 준 기성 정당에 염증을 가진 한국의 젊은 세대를 주목하였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도 이러한 2030세대들이 결집하여 안철수 바람을 업고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안철수는 자신의 정치쇄신을 희생시키고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민주당과 단일화라는 함정에 빠졌다. 안철수 후보는 사퇴하고 미온적이나마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100만여 표의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87년 한국의 민주화이후 4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에 당선되어 2월25일 취임식을 기다리는 박근혜 당선자는 평소 탕평 인사를 공약해 왔다. 여론은 앞으로 박근혜 당선인이 ABC 인사를 하기를 바라고 있다. 즉 능력을 중시하고(Ability) 지역 차별을 않고(Balance) 그리고 반대편에 섰던 사람(Contrarian)도 중용하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민들은 박근혜 당선인이 문재인 후보를 선택한 1469만의 적지 않은 국민들의 마음을 읽어 패배한 민주당과 손을 마주 잡고 국정을 운영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캠프에서 고생한 사람은 공성신퇴(功成身退)의 정신으로 유능한 인물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를 바라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탕평인사를 통해 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동북아시아의 정세변화에 적의 대응하면서도 남북관계에는 유연성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여론을 무시하고 장거리 로켓을 쏘아 올린 김정은이 신년사에서는 “유화 제스쳐”를 보여 박근혜 당선인 측은 “좋은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이미 북한을 방문 김정일을 만난 최초의 대통령으로서 남북관계에는 여유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을 모델로 농촌 근대화를 기하려고 하고 일본의 자민당은 국교정상화를 실현시킨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할 것으로 본다. 박근혜 당선인의 계사년의 동북아 외교가 기대된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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