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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대한민국의 신기술 블루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연구자 A씨는 국가연구비를 받아 과제를 수행했다. 내용은 전세계적으로 아직 상용화돼 있지 않은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3년 연구해 결과를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하니 반응이 좋아 기업체에 제품화 연구를 권유했다.

정부가 지원한 종잣돈으로 결과가 나왔으니 기업에서 마무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관련 대기업들은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전세계적으로 상용화가 안된 제품에 어떻게 투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A씨는 신제품이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했지만, 우리 기업들은 그러니까 안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A씨는 벤처회사를 세웠다. 2년 후 선진국 기업에서 70억원을 투자받아 이 회사는 사실상 외국 기업이 되었고 투자한 외국회사는 최근 자국에 1백억원 규모의 생산 공장을 세웠다. 언젠가 우리는 그 신약들을 수입제품으로 대하게 될 것 같다.

연구자 B씨는 3년 전 바이오칩을 이용한 제품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는데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심사에서 두번 떨어졌다. 1년이란 시간을 낭비한 B씨는 할 수 없이 벤처회사와 공동연구해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처음으로 바이오칩 관련 특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대기업들을 방문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으나 미국에서도 생각 못한 아이디어가 어떻게 한국에서 나올 수 있었겠느냐는 식의 반응이거나 상식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내세워 협의는 결렬됐다. 전문성 없는 기업인들을 설득하는 것이 마치 투자해달라고 애걸하는 것 같아 국내 투자 유치는 포기했다.

얼마 전 개발된 제품들을 미국 전시회에 출품했더니 놀랄 만큼 좋은 반응이 들어왔다. 최근 B씨는 미국.일본회사들의 공동개발.투자.마케팅 제안차 오는 외국 손님을 맞고 미국에 가서 설명회를 갖느라 바쁘다.보아하니 몇백만달러 투자 받고 또 다시 외국회사가 탄생할 것 같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국내에서 자체 개발된 신기술이나 신제품이 국내에서 홀대받고 선진국으로 가버린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연구자들이 상대한 국내 기업들이 외국 회사들보다 훨씬 더 매출액 규모가 컸으므로 문제의 핵심이 기업의 규모나 자금력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까□ 분석해보면, 기업내 전문가의 부재, 실무자들의 결정에 대한 두려움과 이에 따른 책임회피식 접근방법, 열등의식, 패배주의 등 많은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프로젝트의 모험도 계산과 이에 따른 단계별 투자방안 수립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다. 기업에서 흔히 듣는 말은 "우리는 돈이 되는 프로젝트에는 얼마든지 투자한다"는 것이다. 돈 되는 것이 확실하면 삼척동자도 투자할 것이니 공허한 소리다.

정부가 아무리 첨단분야에 돈을 투자해도 결과를 제품화할 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기술 종속을 면할 수 없다.

김선영 서울대 교수 · 유전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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