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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100년 전 신문을 보라 지금 이 땅에 태어난 게 얼마나 뿌듯하고 감사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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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 100년 전 이 땅으로 되돌아가 본다. 1913년 1월 1일. 수요일이었다. 나라가 망한 지 이미 3년째. 경술국치(1910년)가 없었더라면 융희(隆熙) 7년으로 불렸을 해였다. 그러나 이날은 일본 천황 연호인 다이쇼(大正) 2년의 첫날이었다. 당시 유일한 한국어 신문이던 매일신보 1월 1일자는 내지(일본)와 식민지(조선) 각계 인사의 신년덕담들을 게재했다. 매국노 이완용의 휘호도 지면을 장식했다. ‘여묵(餘墨)’이라는 이름의 칼럼은 ‘반도 강산에 경사스러운 구름이 온 사방에 퍼져 있고 동쪽바다에서 상서로운 첫 해가 떠오르니 오늘이 무슨 날인가. 대정 2년 1월 1일이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한문 투를 풀어 씀).

 매일신보는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이지만 한일강제병합 뒤 친일 성향으로 바뀌었다. 100년 전 정초 풍경이 어땠을까. 1913년 1월 1일자를 읽어 보자. 고소(苦笑)을 머금게 되는 기사들이 보인다. ‘요리계의 명월관’(2면)은 경성(서울)의 요정 명월관에 대해 ‘옛 조선풍속과 대한제국 궁중의 향연의식이 많이 있어 귀현신사(貴顯紳士)의 오락지로 최고’라고 대놓고 광고를 해준다. 3면 머리기사는 ‘경성에서 먹는 소는 1년에 2만5000 마리’라는 제목이다. 당시 조선 전체에서 식용으로 도살하는 소가 연 25만 마리라며 ‘내지 사람들은 조선에 있는 자가 그다지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하리라고 추측하겠지만, 일 년에 소 25만 마리를 먹는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라고 은근히 자부심(또는 콤플렉스)을 드러낸다.

 요즘 TV 개그 프로그램 덕에 ‘~하면 뭐하노. 소고기 사묵겠지’라는 말이 유행하듯, 얼마 전까지도 소고기는 한국인에게 고급 먹거리의 상징이었다. 일제시대엔 훨씬 더했을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도살되는 소가 연간 80만 마리이고 수입 소고기 물량도 있지만, 그래도 100년 전 25만 마리라면 예상 밖으로 많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말이다. 피폐한 식민지 치하의 소고기 타령이 왠지 기괴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1913년이면 일제가 토지 수탈에 박차를 가하면서 조선 정부 소유이던 역둔토(驛屯土)마저 몰수해 일본인들에게 헐값에 넘긴 해다. 일반 민중의 생활고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다 아는 일제시대 얘기가 아니라, 100년 전에 비추어 지금을 바라보자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이다. 똑같은 DNA인데 조상들이라고 개개인이 못나서 망국의 수모를 자초했겠는가. 갈라지고 부패하고 앞을 안 보고 뒤만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1일 오늘. 정치적 독립은 물론 경제·사회·문화적으로도 얼마나 커지고 달라졌는가. 감사하고 뿌듯해할 일이다. 국운(國運)이 활짝 열린 이 시대에 자잘한 이해다툼은 100년 전 소고기 타령만큼이나 부질없어 보인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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