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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시몬느·드·보봐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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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너는 남자들과는 달라. 항상 얌전하고 우선 여성 다와야 해』 어렴풋이 말귀를 알아들으면서부터 여자의 귀는 고정되어있다. 어머니로부터, 주위에서, 사회에서. 여인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자다운 여인』-어쩌면 동서고금의 모든 남성들이 바라는 구원의 여인일 것이다. 『오늘의 여인들은 이 허울좋은 「여성적」이라는 신화를 뒤집어쓰고 있다』고 「시몬느·드·보봐르」는 「제2의 성」서문에서부터 말하고 있다. 「여자답다」고 하는 것은 연약하고 우아하고 항상 순종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 너무 대담해도, 현명해도 교양이 많아도 안 된다. 두뇌뿐인 여자, 개성적인 여인은 오히려 남자들을 두렵게 한다.
이리하여 「여자다움」을 위해서는 모든 자기 주장을 포기해야하고. 포기-여인들은 「어쩔 수 없이」이를 포기하고 있다. 이 패배주의의 근본 이유는 여자가 이 세계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데에 있다. 그 자신 피동의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남이 요구하는 진리와 법들은 무작정 받아들여야하는 「영원한 아이」로 자청한 것이다. 여인들은 자주적인 「여자의 세계」를 만든 일이 없었다. 집단 속에 편입되어 종속적인 지위를 받았을 뿐이다.
이러한 신분이 그대로 여자의 성격을 만들어내고 있다. 각각 분리된 가정 속에서 남들과의 소통이 절단된 여인을 시야와 전망이 좁다고 나무랄 수 있을까. 창조와 기획이 아닌 사소한 일들로써 그 지루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말만으로 모든 것을 해내려는 여인에게 게으르고 수다스럽다는 욕을 할 수 있을까. 새삼스럽게 지금 와서 「만들어진」여인에게 소위 남성적이라고 일컫는 열정과 위대함, 공평함을 요구하기는 무리한 일이 아닐까? 오늘날의 여인들은 여자로서의 조건과 「여성적」숙명을 동시에 양립시켜야하는 어려운 요구 속에서 망설이고 있다. 그리하여 주체로써 자기를 해방하려 애쓰기보다는 맹목적인 복종의 생활을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몬느·드·보봐르」는 계속한다-단념은 책임 포기이며 도피일 뿐. 여인에게 있어선 자기의 해방을 위하는 일밖엔 아무런 나갈 길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남자와 똑같은 요구, 똑같은 존경, 그리고 자유성으로 교육되고 같은 장래가 약속되어야한다.
그리고 남자의 우월감과 여자의 열등감이 없는 남녀의 사회가 싱거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여자를 자유롭게 해방시킨다는 것은 여자와 남자의 관계 속에 여자를 가두어두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 그 관계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가 독립적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남자에게로 <짝을 지어> 살아가기를 그만 두지는 않는다. 남녀 관계의 이와 같은 상호성은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눔으로써 생기는 것- 욕망이나 사랑, 꿈 그리고 모험 등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종속관계에서의 온갖 위선에서부터 풀려져 인간을 둘로 나눈 <분할>이 그 참된 뜻을 명백히 할 것이다. 한 쌍의 남녀는 그때 참된 모습을 발견한다.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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