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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임대희]중국의 사법(司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92년에 공리(??)씨가 열연하였던 “추국(秋菊打官司)”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아마도 한국에는 “귀주 이야기”로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다. 베니스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아서 유명해졌는데, 그 내용이 중국의 사법(司法)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극적인 사항을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로 중국에서의 사법 상황과는 이러한 현실과 좀 동떨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 중국의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분이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가급적이면 재판에 넘어온 안건 가운데, 조해(調解)로 넘길 수 있는 사안은 합의해서 조해로 넘기도록 유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중국에서는 전통시대로부터 조해의 역할이 몹시 크다. 지역의 유지(有志)나 원로들에게 중재(仲裁)와 비슷한 방법으로 분규를 해결하는 방식인데, 법원의 판결과 같은 강제성을 띠지는 않지만, 이러한 조해를 통해서 상당한 사안이 해결되고 있다. 법원에 넘어온 안건을 조해로 돌리는 경우가 65%나 된다고 하니, 법원에 넘겨지기 전에 조해로 가버리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비율을 갖는 셈이다.

중국에서는 법원이나 검찰이 모두 사법기관에 해당한다. 중국의 헌법(123조)에서는 “국가의 심판기관”을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경찰과 검찰과 법원이 들어간다(公檢法). 그런데, 중국에서는 군대가 공산당의 산하에 있듯이, 이러한 심판기관도 당의 산하에 있다. 최고위급으로 정법위(政法委)가 있으며, 여기에서 합의된 바를 하부 기관이 집행하는 방식이다. 법원에서 판결하는 경우에도 심판위원회(審判委員會)가 결정한 방향에 따라서 각 판사가 이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중국에서 이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과 대화하다보면, 오히려 한국의 사법 판결에서는 특출난 창작성을 발휘하려고 힘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평가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칭찬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사법기관에서 국민들의 법인식과 동떨어지게,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는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비아냥으로 들릴 수도 있다.

최근에 한국에서는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는데, 중국의 경우에는 검찰은 공무원 탐오에 한해서 수사권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수사권이 없다. 특이한 것은 법원의 판결에 모순이 없는지를 검찰이 감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많다. 경찰(公安)이 일반 형사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갖고 있으며, 세관이나 삼림(森林)경찰, 철도경찰, 또는 중기위(?中央?律??委??)등도 각기 해당 사안에 대해서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수사결과는 검찰에 보내지며, 전체적인 공소권은 검찰이 가지고 있다.

검찰원이나 법원이 어떠한 인원이 주도하고 있는지도 관심꺼리이다. 1970년대에는 군대를 제대한 사람들을 검찰이나 법원에서 받아들였다. 이들은 지금도 퇴직하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군대를 제대하고 사법계에 배치된 사람들의 비율이 35% 남아있다. 90년대 후반부터 교수들이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도 중국의 법원에는 교수출신이 법원장이나 부법원장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 후반부터 사법고시 통과자들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들의 임용에는 당의 조직부나 인사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어있다. 일단 법원에 들어오면 대부분의 경우에 경력에 따라 진급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기록을 담당(2년)하다가 조리법관이나 조리검찰관이 된다. 3년 이후에는 정법관이나 정검찰이 된다. 하급 기관에서 상급 기관으로 인사이동이 거의 없으며, 이동하는 경우에는 경력 계산이 새로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 대통합의 취지에서 중국에서는 공산당원 이외의 인사를 받아들여서 검찰이나 법원에서 업무를 수행하게 하고 있다. 이들 당외 인사들은 출세는 빠르지만, 단위 부서에서 최고에까지는 이르지 못 하고, 부책임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들 본인이 자신들의 한계를 알고 있으므로, 비주류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대학교수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법원이나 검찰에 겸직을 하고 있다 보니, 대학에서는 그들 겸직자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면서 정상적인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구성원들이 모두 이러한 인사상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틀에서 짜놓은 방안이므로, 효율성이나 합리성만을 주장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한국에서 중국에 진출해 있는 투자자들이 법적인 문제로 변호사에 의뢰했더니, 의뢰를 받은 중국인 변호사가 “X맨”이 되어서 상대측에 유리하게 끌고 가더라는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례가 벌써 여러 번 발생했기에 한국 로펌이 중국에 진출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또한, 중국에서는 사법고시 통과 후 변호사 활동 자격을 가지려면, 변호사 사무실에서 1년간 실습경험이 있어야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각 지역마다 생활도 되지 않는 금액을 지불하고 있는 점도 젊은이들의 불만 요소가 되고 있다.

이번에 대선날 새벽일찍 투표를 끝내고, 필자는 중국의 두군데 지방대학에서 당률(唐律)에 대해서 강연하러 왔다. 강연후 중국 교수들과 식사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에서, 한국의 대선 과정에 대해서 중국 교수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있는 점에 약간 놀라기도 했다. 한편, 그 자리에서 젊은 교수들은 일본의 야스구니에서 범죄를 저지른 중국인에 대한 조치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젊은 교수들은 중국 정부 쪽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발언을 하였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고 나서, 원로 교수 한분이 차 한잔 하고 가라면서 필자를 따로 불렀다. 그 분은 범죄인 인도협정은 국가간의 약속이므로 법률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정치범이므로 배려해야 한다는 요구는 정치적인 고려사항이므로 법률적인 제약은 없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중국이 일본을 압박하는 시점에, 한국도 이에 편들어 일본을 궁지에 밀어붙이는 것은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해서 굳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만난 지방고등법원의 판사 한분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그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는데, 필자에게는 역시 전문가들의 견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한국쪽에서 이번 사안을 법원의 판단으로 넘겼다는 것은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의사 표명이므로, 그 나름대로 타당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국 쪽에서는 일본인이 한국이나 미국에서 말뚝을 박고 돌아다녀도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지 않고, 중국인 범죄자만을 일본에 넘겨주는 것은 국가간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말뚝 박은 행위는 경범죄에 해당하므로 처벌이 무겁지는 않겠지만, 추후에 이러한 사건이 빈발하는 것을 막으려면 처벌하고 넘어가는 것이 앞으로 이러한 돌출된 사건으로 사회를 문란시키지 않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제안하는 방안은, 한국의 법원에서 해당 인도협정의 유효성을 거론하여서, 한국과 일본이 형평성을 유지하여야 해당 인도협정이 효력을 갖는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즉, 일본인 범죄자를 30일이나 60일 이내로 한국 쪽에 인도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서, 한국에 있는 범죄인을 일본에 넘기도록 처리하는 것이 삼국 모두의 체면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이렇게 조건을 붙여서 처리하는 경우에는 한국측의 이 안건의 처리에 대해서, 중국으로서도 국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일본과 맺어놓은 범죄인 인도협정의 대상이 경범죄나 잡범까지 포함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임대희 경북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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