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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한 「나」의 심리추이|이어령 작 「장군의 수염」|최인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S신문 「카메라·맨」인 소설가 지망의 청년이 원인 모르게 죽었다. 소설가인 「내레이터」「나」가 사건에 말려든다. 「나」는 고인이 남김 생의 흔적을 더듬어 한 인간 김철훈의 초상을 얻지만, 그가 죽은 참다운 원인-이른바 사인을 알 수 없다는 「타인이라는 벽」을 발견한다. 이것이 「장군의 수염」의 「스토리」이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서 접근할 수 있다.
A, 「김철훈」의 초상=변사한 김철훈은 유아일 때 어머니의 실수로 이마에 화상을 입는데 그후의 그의 전 생애는 마치 이 화상을 끊임없이 연습해간 것 같은 동형의 좌절들의 일연의 연속-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동기와 결과의 상극이 그것이다. 「김철훈」의 전기를 구성하고 있는 「에피소드」의 일군은 아마 이 작품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그것들은 「나이브」한 감성의 피부에 각인된 이 부조리한 생의 「메커니즘」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문학적 원적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하나같이 상징성을 띠고 있다.
연인이던 나신혜양은 『상상만을 가지고 여자를 사랑하려고 모험한 그런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자만이 아니라 생을 그렇게 파악하려고 한 진혼의 초상을 우리는 얻게된다. 김철훈을 구지주의 출신으로 설정한 것은 이 전기에 한결 사실성의 외관을 주는 효과를 가져오게 했는데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한정이라고 필자는 생각지 않지만, 우리 문학의 현황에서처럼 「현대성」과 「근대성」의 문제가 「공정한 관념성」과 「성실한 사실성」의 문제와 혼선을 일으키고있는 경우에는 소박한 감성들에 안정감을 주는 결과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B. 「나」의 탐사=「김철훈」의 전기는 형식상으로 말한다면 이 소설의 객체에 해당한다. 그것은 한인간의 죽음의 비밀을 알아보겠다는 「나」의 수사라는 행위의 내용을 제공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작품의 이 측면에서는 고인의 인간적 내포여하는 아무래도 좋고 최소한 「인간」이면 족하다.
작품이 추리소설의 형식을 가지는 것도 이 같은 인간존재의 원리적 한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우선 보자. 그 점에서 추리소설은 적당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런 형식을 택한 것은 잘한 일이다. 나머지 문제는 추리의 과정에 있다. 사건이 「오리무중」일수록 추리소설은 맛이 있다.
「김철훈 변사사건」의 경우는 범적이 너무나 역연하다. 소설이 반쯤 진행되면 독자는 「자연인」의 얼굴을 한 범인을 찾자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이 아니 것을 알 수 있다. 범인은 「형이상적인 그 자」가 가장 즐기는 「타입」의 희생자인 것이 명백해진다. 김철훈같은 사람이 자살 안하고 누가 하겠는가? 추리소설이란 형식을 택함으로써 작품이 얻은 소득은 이 경우 탐정 소설적 긴박감이 아니라, 이런 주인공의 전기를 쓸 때에 빠지기 쉬운 작자의 주인공에 대한 익애에서 벗어나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효과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형식상의 주인공인 「나」는 주인공의 밖에서 있을 수 있게 되고 공정한 전기작자의 태도를 유지한다는 결과가 되고 있다.

<결어>「누가 죽였는가?」에서 출발한 이 「추리 소설」은 스스로 자기 죽음을 예언한 불행한 사람의 「전기」로 끝난다. 『수염 때문에 나는 죽는 거다. 나는 암살을 당한 거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우리도 그처럼 암살을 당해야 할까? 작품 자신이 그에 대한 암시를 하고있는데 작품이 다 끝난 그 부분에서 뜻밖에도 이 소설의 제3의 측면(아마 가장 중요한)이 드러난다.
「수염」 때문에 죽음을 「당」해서야 쓰겠는가? 「나」가 부르고 싶다는 「비숍·킹」의 시속의 「당신」이란, 새로운 인간, 후 김철훈적 인간의 눈에 비친 그 문제의 「수염」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이 지점에까지 이르지 못한 불행한 인간 김철훈의 전기를 거쳐 작품의 참다운 「테마」가 나온 것이다.
다만 「나」의 시점이 그런 동찰을 결과에 보여주는 것이 필연적이도록 「나」의 심리 추이가 그려졌다고는 볼 수 없으며, 이 점이 이 작품에서 가장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작품을 철훈의 전기라고 보고 「나」를 「나레이터」라는 기술적 기능의 의인화라고 본다면 그런 요구는 고양이의 그림을 보고 호랑이보다 체구가 작다고 비난하는 것이 될까 두렵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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