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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새해엔 글로벌 평화 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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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가레스 에번스
전 호주 외교장관

평화에 대한 희망은 2012년엔 이뤄지지 않았다. 분쟁이 시리아에선 더 악화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선 질질 끌었으며 아프리카 서부·중부·동부에선 수시로 터졌다. 미얀마·남아시아·중동에선 종족·종파·정치 문제로 인한 폭력 사태가 수없이 발생했다. 남중국해에선 중국과 이웃국가들, 동중국해에선 중국과 일본 사이에 긴장이 고조됐다.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대형 분쟁은 발발하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강력한 개입으로 제2차 가자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선 오랫동안 진행되던 평화회담이 마침내 결실을 봤다. 미얀마에선 지속 가능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커다란 진전이 이뤄졌다. 대형 인종학살 참사도 벌어지지 않았다.

 미디어는 매일같이 최신 유혈극을 보도하느라 이보다 더 큰 기사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에 걸쳐 주요 전쟁 및 대형 폭력사태 발생과 사망자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주요 분쟁은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정점을 찍은 이후 발생 건수가 50% 이상 줄었다. 인종학살과 대량 잔학행위, 이로 인한 사망자 모두 그렇게 감소했다.

 이러한 ‘새로운 평화’ 현상은 스웨덴의 ‘웁살라 분쟁 데이터 프로그램’의 우수한 데이터베이스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앤드루 맥의 ‘휴먼 안보 리포트 프로젝트’에서 처음 제기했다. 하버드대의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질의 더 나은 천사』라는 저서에서 1945년 이후 강대국 사이에서 ‘장기간의 평화’가 유지된 것은 물론 지난 한 세기 동안 폭력을 향한 인간의 욕구가 계속 감소해왔음을 지적했다. 고강도 분쟁이나 전쟁(연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정의) 발생은 분명히 하향 곡선을 그렸다. 전쟁과 관련한 민간인 희생도 마찬가지로 줄었다.

 냉전 후 새로운 평화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지난 15년 동안 이뤄진 분쟁 방지, 분쟁 관리, 평화협상, 분쟁 후 평화 구축 작업들이다. 대부분 유엔이 앞장선 것이다.

 45년 이후 장기간의 평화가 가능했던 이유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강대국의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근본적인 변화가 가장 설득력 있다. 지난 세기의 파괴행위를 목격했기에 그들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무런 미덕도, 고귀함도, 유용성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이는 핵전쟁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고나 오산, 시스템 에러, 파괴활동을 통해 전쟁이나 핵 교전에 뛰어들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런 위험을 크게 줄인다. 이 이론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경제력·군사력의 극적인 변화에 적용해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은 미국이 지배력과 우세를 주장하기보다 상호 친선교류를 통해 중국에 어떠한 전략적 여유를 줄 것이라는 합리적인 희망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새로운 지도자 아래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중국어에 능통한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는 최근 미국 워싱턴의 브루킹스 연구소에서의 연설에서 내년 중국 국가주석을 맡을 시진핑(習近平)이 외부 세계와의 협력정책을 지속할 것이며 그의 팀은 대결을 지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드 전 총리는 각국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는 것이 분별 있는 태도라고 지적하면서 자신은 낙관주의자라고 밝혔다.

 낙관주의는 좋은 대응방안이다. 다른 대안을 몇 년간 써본 국가 지도자는 결국 협력의 미덕을 인정하게 마련이다. 비관론자는 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상당히 경계하며, 경쟁의 관점에서 국제관계에 접근한다. 하지만 낙관론자는 협력이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Project Syndicate

가레스 에번스 전 호주 외교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