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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갑부들 "상속세 폐지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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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상속세 폐지에 반대한다!"

소득 분배의 형평성을 강조하는 시민단체나 노동단체가 주장할법한 구호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일부 갑부들이 머리띠를 질끈 매면서 외치고 있는 주장이다. '부(富)의 불균형'을 완화하고 유산을 상속받은 사람들이 졸지에 '귀족 계급'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감세안이 상대적으로 부자들에게 유리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유명 갑부들이 연방 재산세의 하나인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청원운동을 맹렬히 전개하고 있다.

청원운동에 서명한 이들 중에는 록펠러가(家) 및 루스벨트가의 후손들과 영화배우 폴 뉴먼, 언론재벌 테드 터너, 국제투자가 조지 소로스와 워렌 버핏, 윌리엄 H 게이츠 2세(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부친) 등이 포함돼 있다.

소로스는 13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세상에 살고 있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에 유익하다고 볼 수 없다"며 "상속세를 폐지하면 이런 경향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상속세를 폐지할 경우 자선단체에 대한 부자들의 기부 의욕을 떨어뜨리는 한편 재정 적자를 키워 경제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줘 결국 금리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로스는 "세금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유쾌하지 못한 현실이지만 세금이나 죽음을 폐지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2001년 미 의회를 통과한 감세안에 따르면 상속세는 향후 수년 동안 단계적으로 줄어들어 2010년에는 완전 폐지된다. 상속세 폐지론자들은 상속세 때문에 물려받은 기업 자체를 매각해야 하는 경우까지 생긴다면서 상속세는 "죽음의 세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청원운동에 나선 사람들도 주위에서 차가운 시선이 있음을 시인했다.

소로스는 "내게 '도대체 당신 뭐하는 짓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으며, 윌리엄 게이츠 2세도 "내 아들(빌 게이츠)은 내 의견에 동의하는데, 딸들은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서경호 기자

<사진설명>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부친(左)과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가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에 참석, 개회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워싱턴 로이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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