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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대첩 간 40대男, 여고생에 접근해…경악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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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솔로대첩’에서 참석자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광주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남성 200여 명과 여성60여 명이 참석했다. [뉴시스]

‘님연시’의 설렘이 ‘엉만튀’의 구림으로.

 크리스마스이브 화제의 이벤트였던 ‘솔로대첩’을 두고 나온 뒷말이다. ‘님연시’는 솔로들의 대규모 성탄 미팅을 제안한 유태형(24·광운대 3년)씨의 페이스북 문패로 ‘님이 연애를 시작하셨습니다’의 약어다. 이 같은 사상 초유의 즉석 미팅을 기다리면서 일부 음습한 네티즌이 착안한 성추행 꼼수가 ‘엉만튀’(엉덩이 만지고 튀기)다.

 님연시냐, 엉만튀냐의 논란 속에 솔로대첩 계획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퍼지면서 서울 여의도를 비롯한 전국 16곳에서 미팅이 예정됐다. 참가 의사를 밝힌 사람만 2만 명에 달했다.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행사는 그러나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서울 3500여 명을 포함해 부산·광주 등 9곳에서 경찰 추산 64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미팅 참가자가 아니라 구경꾼이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도 발목을 잡았다. JTBC 취재진이 현장에 나가봤다.

데이트 거절당한 중년 남성 “기분 잡쳤다”

이번 행사는 불법집회 논란을 없애기 위해 참가자들이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플래시몹’ 형태로 진행됐다(사진 위). [JTBC] 행사장인 여의도공원 앞에서 한 업체 직원이 참가자들에게 피임용품을 나눠 주고 있다(아래). [JTBC]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서울 여의도공원. 40대로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교복을 입은 여고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공원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JTBC 카메라에 포착됐다. 누가 봐도 어색하고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취재진은 거리를 두고 이들의 뒤를 따라가봤다.

현장에는 400여 명의 경찰이 배치돼 있었지만 제지하는 경찰관은 없었다. 인파를 뚫고 조용히 공원 외곽으로 향하는 이들을 막아선 것은 한 무리의 젊은 남성들. 여고생을 사이에 두고 고성이 오가는 등 한동안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실랑이 끝에 중년 남성이 여고생을 두고 자리를 뜨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얼굴이 상기된 여고생에게 ‘데이트를 허락했느냐’고 묻자 “아니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길이었느냐고 하자 “그냥 구경을 왔다가…”라며 말끝을 흐렸다. 도망치듯 사라지는 중년 남성을 따라가 다시 물었다. 이 남성은 당당하게 “데이트 행사를 한다고 해서 참가했고,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 얘기 중이었을 뿐”이라며 “저 친구들이 디스(‘경멸·모욕’의 인터넷 은어)해 기분을 잡쳤다. 집에 가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젊은 여성을 향한 그의 ‘데이트 신청’은 계속됐다. 주최 측이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범죄 예방을 위해 200명 규모로 꾸렸다는 ‘자경단’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여성들에게 말을 건넸다. 아슬아슬한 스킨십도 이어졌다.

 현장을 지키던 한 경관에게 촬영한 영상을 보여줬다.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분명 잘못된 점이 있는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신고가 접수되지 않아 단속할 수 없다”고만 했다.

민망한 상혼 속 ‘원나이트 대첩’

 행사 시작 전부터 광고전에 나선 각종 업체들로 공원 입구는 혼잡했다. 일부 업체는 참가자들에게 피임용품을 나눠줬다. “올바른 성생활을 위해 무료로 나눠드리고 있다.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업체는 공원 한편에 부스까지 마련해놓고 커플이 된 참가자들에 한해 ‘성인용품 박스’를 나눠준다며 참가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성인들만 사용할 수 있는 비밀 상자”라며 “오늘 탄생한 커플들이 뜨거운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 나왔다”고 했다. 취재진에게 보여준 박스 안에는 피임용품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장난감 수갑을 나눠주는 업체와 모텔 정보 제공업체까지 뒤섞여 참가자들을 민망하게 했다.

 정모(회사원)씨는 “아무리 즉석 만남 행사라 해도 노골적으로 이런 물건을 나눠주는 것은 성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했는데 업체들의 장삿속에 놀아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고 꼬집었다.

 기업체에 행사 협찬을 요구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여의도공원 관계자는 “기업에서 문의 전화가 열 곳도 넘게 왔는데 대부분 (주최 측에서) 2000만원씩 돈을 내라고 하는데 사실이냐는 확인 전화였다”고 전했다. 주최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행사 시작 전 여의도공원 측은 도시공원법 위반으로 솔로대첩을 고발하겠다고 발끈했다. 행사가 영리성을 띠고 범죄와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였다. 주최 측은 불법 집회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 부랴부랴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약속 장소에 모여 짧은 시간 동안 일정한 행동을 한 뒤 흩어지는 행사) 형태로 바꿨다.

애초 계획은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단체 퍼포먼스를 벌인 뒤 짝을 찾아나서는 것. 하지만 진행 미숙으로 처음부터 우왕좌왕했다. 여기저기서 “지금 뭐 하는 거냐”는 원성이 쏟아졌다. 예고 없이 시작된 행사는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엉만튀’ 등 일찌감치 흑심이 준동한 탓인지 남성 참가자가 월등히 많았다. 이모(대학생)씨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여성 참가자는 찾아볼 수 없다”며 “크리스마스를 맞아 솔로 탈출을 꿈꾸며 왔는데 오히려 더 우울해졌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부산 광안리에 모인 참가자들은 남자가 너무 많자 즉석 씨름판을 벌이기도 했다. 인천과 대전 등 5곳은 인원이 너무 적어 행사 자체가 취소됐다. ‘군대 입소식과 비슷했다’ ‘남녀 비율이 정자 대 난자 비율과 같다’는 참관기도 올라왔다. 그래서 참가자들이 이번 행사에 새로 붙여준 이름은 이랬다. ‘남자대첩’.

곽재민·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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