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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갑씨 "국악음색 낼 파이프 만드는게 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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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겔바우 마이스터.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하는 장인(匠人) 이라는 뜻이다. 과천성당에서 오르간 설치 작업 중인 구영갑(46) 씨가 건네준 명함에 그렇게 씌어 있었다. 1983년 독일로 유학, 11년 만에 마이스터 자격증을 따낸 한국인 최초의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텁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외모와 목소리는 마치 가톨릭 사제 같은 분위기다.

"과천성당의 파이프오르간은 비교적 작은 편이지요. 그래도 9백62개의 크고 작은 파이프가 16종의 음색을 냅니다."

무게 5t, 정면 크기 4.5×4.5m의 이 파이프오르간을 만드는데는 1년6개월이 필요하고, 국내 설치작업만도 5주가 걸린다. 구씨는 94년 8월 마이스터 자격증을 따낸 후 이듬해 독립, 프랑크푸르트에 오르간 제작사 '오르겔바우 쿠'를 차렸다. 오는 11월 6일 봉헌미사에서 완성 후 처음으로 웅장한 화음을 낸다.

국내에 있는 파이프오르간은 60여대. 그중 과천성당을 포함해 6대가 구씨의 작품이다. 그가 만든 것 중 가장 큰 규모는 94년 독일 퓨러사와 공동제작한 부천순복음교회의 파이프오르간(45 스톱, 3천6백 파이프) . 92년 대구 계명대 김춘해 교수 연구실에 있는 연습용 오르간(8스톱) 을 시작으로 95년 서울 형제들의 교회(6스톱) , 98년 안산 한별교회(7스톱) 등을 제작해 왔다. 스톱은 건반 양옆에 달린 음색조절용 손잡이로 이것이 많을수록 다양한 음색을 낸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주로 오래된 파이프오르간의 수리를 맡고 있다.

구씨는 자신의 작품을 점검하기 위해 매년 두차례 한국을 방문한다. 때맞춰 파이프오르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특강을 하면서 아예 '오르간의 역사와 구조의 이해'라는 소책자도 만들었다.

구씨는 최근 세종문화회관 요청으로 파이프오르간 수리와 세척을 위한 제안서를 완성했다. 세종문화회관은 내년 하반기 음향 개.보수 기간에 맞춰 파이프오르간도 수리할 계획이다.

"78년 개관 당시 동양 최대규모의 오르간이었지만, 컴퓨터 메모리 시스템이 나오지 않아 음색의 조합을 저장해 놓는 메모리가 9개밖에 없어요. 연주자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는 거지요. 요즘은 웬만하면 4천개 이상이 가능합니다. 음색 모터도 수리해야 합니다. 파이프오르간은 사후관리가 더 중요해요."

파이프오르간은 8~10년마다 완전 분해한 후 세척해야 한다. 먼지나 곤충의 배설물이 파이프에 가득 묻어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름철에 습도와 온도가 높다는 걸 감안해 제작해야 합니다. 조율도 매년 1~2회 해주어야 합니다. 파이프 구멍을 넓히거나 좁히거나 해서 음높이를 맞추지요."

구씨가 이 길로 들어선 이면에는 지난날 우리 사회의 굴곡이 담겨 있다. 한양대 생물학과에 다니던 그는 75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돼 성동경찰서 유치장에서 2주를 보낸 뒤 제적을 당한 후 강제로 입대됐다. 경찰의 눈을 피해 대전으로 내려간 그는 학력을 감추고 79년 목원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고교 시절 클래식에 심취했던 그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사인을 받아낼 정도로 열성팬이었다.

80년 '서울의 봄'때 복학 통보를 받고 생물학과가 아닌 작곡과로 편입했다. "음악이 좋아 음악대학에 입학했는데, 점수를 매기기 시작하니까 큰 압박으로 작용하더군요. 음대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음향학을 전공하기 위해 베를린 공대로 유학간 것도 이 때문입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구씨는 국악기의 음색을 낼 수 있는 파이프오르간을 개발하는 게 꿈이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설치될 파이프오르간에도 관심이 많다. 자신의 손으로 만들면 그보다 큰 영예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하루속히 오르간이 무대 정면에 자리잡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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