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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에 부는 '반기독교 바람'

미주중앙

입력

1) 뉴욕 타임 스퀘어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무신론자협회가 반기독교적 광고를 내걸었다. (2) 이에 맞서 모르몬교 역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크리스마스 광고를 하고 (3) 사이언톨로지 교회에는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4) 타임 스퀘어 광장 한복판에서 한 남성이 기독교를 조롱하며 예수로 분장을 하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모습.

뉴욕 맨해튼의 세계적 번화 거리인 ‘타임 스퀘어(Time square)’. 맨해튼에서도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타임 스퀘어는 하루에 150만 명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연간 유동인구가 무려 5억5000만 명에 이르는 이곳은 명실상부한 세계적 랜드마크(land mark)다. 뉴욕의 브로드웨이(Broadway) 길과 7가 교차점을 중심으로 42가부터 47가에 걸친 타임스퀘어는 쉴 새 없이 번쩍이는 광고 전광판들로 인해 도시 속 ‘빛나는 밀림’이다. 24시간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네온사인과 각종 LED 대형 광고판은 타임스퀘어를 화려하게 치장하며 전세계 옥외광고의 메카가 됐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지난 14일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찾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그곳에는 오늘날 미국의 종교적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종교의 다원화가 시간을 앞서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14일 오후 5시. 주말이 다가오는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브로드웨이 길거리는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댔다.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 소리 가운데 바삐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치기를 수십 번. 높은 빌딩 숲 사이로 길을 따라 사람들을 헤쳐가다 보니 어느새 화려한 '스크린 밀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뉴욕 맨해튼의 중심부인 타임 스퀘어다. 한눈에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각 빌딩 벽면은 크고 작은 광고 스크린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타임 스퀘어 자체가 거대한 광고판인 셈이다.

타임 스퀘어 광장 중심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대형 광고판들을 쭉 둘러봤다. 그때 한가지 광고문구가 눈에 띄었다.

'Keep the MERRY Dump the MYTH! (즐거움만 간직하고 신화는 버리세요!)'.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산타클로스와 가시 면류관을 머리에 쓴 채 고통스러워 하는 예수의 모습이 빌보드 광고판 속에서 극명하게 대비돼 있었다. 한 남성이 광고판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있었다.

애런 쥬드(27.뉴저지)씨는 "이곳 타임 스퀘어에서 상업 광고가 아닌 종교와 관련돼 내걸린 광고는 아마 저것이 처음일 것"이라며 "크리스천으로서 너무 안타깝지만 미국에서 반기독교적 흐름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 광고는 미국 무신론자(American Atheists.이하 AA) 협회가 지난 11일부터 타임 스퀘어에 내걸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AA의 전략적인 광고다. 이 광고는 내달 10일까지 내걸릴 예정이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1시간 정도 서서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길을 유심히 살폈다. 대다수의 사람은 AA가 내건 크리스마스 광고에 한번쯤 눈길을 빼앗기고 있었다.

북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바로 옆에는 또 하나의 대형 광고가 타임 스퀘어의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Christmas is…Love Family Jesus Christ(크리스마스는 사랑 가족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르몬(Mormon)교의 타임 스퀘어 광고다. 정통 개신교는 모르몬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동안 서서 광고를 보고 있는데 한 중년 여성이 친절한 말투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혹시 모르몬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모르몬 교도 제니퍼 에쉬(44)씨는 "우리는 예수님이 크리스마스에 태어났다고 믿지는 않지만 미국인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길 원한다"며 "모르몬은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상업주의나 일부 무신론자들에 의해 변질되고 있는 걸 우려해 타임 스퀘어에 광고를 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타임 스퀘어내 46가 한복판에는 대형 '사이언톨로지 교회(Scientology church)'도 자리를 잡고 있다. 사이언톨로지는 톰 크루즈를 비롯한 존 트라볼타 더스틴 호프만 제니퍼 로페즈 윌 스미스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믿게 되면서 미국에서 신흥종교로 급부상하고 있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사이언톨로지 교회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종교로 유명해진 탓에 수많은 방문객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고풍스러운 내부 인테리어 가운데 깔끔한 정장을 입은 사이언톨로지 신도들이 각종 안내 책자를 나눠주면서 방문객들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안내책자는 영어를 비롯한 스패니쉬 불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등 각종 언어로 번역돼 있었다. 한국어로 된 책자도 눈에 띄었다.

애나 제퍼슨(24) 씨는 "현재 종교는 없지만 내 인생에 대해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은 항상 존재한다"며 "그런 질문에 대해 사이언톨로지 신도와 잠깐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말들을 많이 해줘서 힘이 난다"고 말했다.

사이언톨로지는 입구와 벽면에 광고 영상과 함께 삶의 이유와 목적 등을 언급하며 '인생의 기쁨을 언제나 누릴 수 있다'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사이언톨로지 한 관계자는 "타임 스퀘어는 언제나 사람이 많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방문객들이 더 늘어나는 곳"이라며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인생에서 갖는 의문이나 공허함을 우리가 들어주고 해답을 제시해줘서 그들이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밤 늦게까지 타임 스퀘어 곳곳을 돌아다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그 어디에서도 미국의 종교라는 '기독교'의 메시지는 찾아볼 수도 들리지도 않았다.

"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용기다"
미 무신론자협회(AA)

미국 무신론자(AA) 협회는 직업과 인종에 상관없이 각계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전직 목사를 비롯한 교수, 의사, 방송인 등 구성은 다양하다. 뉴욕을 비롯한 캘리포니아, 텍사스, 조지아 등 전국 19개 주에 100여 개가 넘는 지부가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AA 데이비드 실버맨 회장은 “수많은 사람이 가족들이 믿는 기독교 때문에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내면에는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가 많다는 것을 안다”며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과 가족에게 무신론임을 솔직히 말하라고 용기를 복 돋아주고 그런 거 없이도 충분히 삶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AA에서 언론 디렉터를 맡고 있는 테레사 맥베인은 전직 감리교 목사다.

테레사 맥배인 디렉터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진정한 아름다움은 가족, 친구, 사랑 등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지, 신의 존재와 크리스마스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정죄나 죄책감을 주는 종교 따위는 치워버리고 행복한 홀리데이 시즌을 보내길 바란다”고 전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AA측은 타임스퀘어의 광고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AA측은 웹사이트(www.atheists.org)를 통해 광고비 조달을 위한 기부를 받고 있는데, 매일 수백 명의 무신론자들이 10달러~500달러까지 기부를 하고 있다.

한편 AA는 지난 1963년 창설돼 내년이면 50주년을 맞는다. AA는 오는 3월28일 텍사스주 오스틴 지역에서 ‘50주년 기념 전국 컨벤션 행사’를 갖게 되는데 미 전역에서 연예인, 방송인, 기업인, 유명인사 등 무려 1500여 명 이상이 모일 예정이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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