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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장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유명한 「발코니」장면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난다. 대통령 관저를 청와대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을 고칠 필요가 있는가, 고친다면 뭐라고 불러야 옳은가 하는 설문이 돌고 있다. 「로미오」면 어떻고, 몽룡이면 어떠냐. 장미는 뭐라 부르더라도 장미요, 장미를 개나리라고 불렀대서 장미의 향기가 죽진 않는다.
그러나 사물의 이름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세상엔 작명가라는 것도 있고, 정당을 만드는 사람들 마저 정당정책을 짜는데 쏟는 것 보다 몇 배나 더 큰 정력과 지략을 정당 이름을 짓는데 부어 넣는다. 무엇이고 한번 이름이 붙으면 그 이름과 실체가 어느 사이엔가 혼연 일체가 된다.
이름은 실체의 호칭으로 쓰일 뿐 아니라, 실체의 「이미지」를 환기하고, 실체의 인상을 좌우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새로 이름을 짖는 경우에는 언어관습이나 전통에 비추어서 좋은 말, 탐스런 글자를 고르려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와대로 고친 것을 이제 다시 딴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청와대로 개칭한 것은 민주당 시절의 일이었지만, 실상 청와대는 대통령책임제인 현정권의 대명사요, 상징으로 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청와대란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현정권의 「이미지」가 못마땅하다는 말일까. 그렇지 않으면 청와대라는 이름이며 글자가 대통령 관저의 호칭으로서 적당치 않다는 것일까. 또 혹은 원래가 귀하고, 비술적 가치마저를 지닌 청기와가 나라 원수의 저택 지붕엔 오히려 부족하다는 것일까.
위의 세가지중의 어느 것이든 간에, 청와대를 딴 이름으로 바꾸는 것에 찬성할 수 없는 첫째 이유는, 이름이란 그렇게 함부로 바꾸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이름이 좋아야 하고 중요하기도 하지만 이름은 결국 실체에 따르기 마련이다. 실체만 좋고 훌륭하면, 그 이름도 좋고 훌륭하게 들리는 것이다. 개나리를 장미라고 부른다고 별안간에 장미로 둔갑 할 리 없고, 장미는 무어라 불러도 장미의 감미로운 향기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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