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이삿짐을 싸게 되었다. 애서가들의 번듯한 장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작은방 하나를 책더미가 빼곡히 차지하고 있으니, 이사 때마다 여간 골칫덩이가 아니다.
십수년이 흘러 누렇게 바랜 잡지마저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도 큰 병이지 싶다. 그래도 책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해온 사람으로서 책에 대한 이만한 외경심도 없어서야 하며 위안삼는다.
내 독서습관은 출판쟁이답게 잡식성 남독에 가까울 터다. 하지만 중학시절에 고전읽기대회라는 데 나가느라 『그리스 로마 신화』『로빈슨 크루소』 같은 책 네댓권을 줄줄 외다시피하던 색다른 기억도 있다.
그후 세계문학전집이며 역사.사회과학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운명처럼 나를 출판의 길로 이끈 것은 소년기의 그 우스꽝스러웠던 수험형 독서체험이었는지 모른다.
독서인으로서의 내 손끝을 스쳐간 책들 가운데, 저 1980년 벽두에 영어의 몸으로 만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그로부터 20여년이 흘러 접한 그의 부인 린 마굴리스, 아들 도리언 세이건 공저의 『생명이란 무엇인?뺐?퍼뜩 떠오른다.
역설적이게도 남편은 우주적 시각으로, 부인과 아들은 현미경 속의 작디 작은 우주를 통해, 내 지적 호기심의 본류라 할 수 있는 인간사회의 시원과 궁극의 양면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나치수용소의 경험을 담아낸 빅터 프랭클의 책,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칼릴 지브란의 잠언, 노먼 베쑨과 체 게바라 전기 같은 책들도 언제나 반추해보곤 하는 목록들이다. 지난 96년 나는 출판계로부터의 퇴출(?) 을 자청하였다.
그러고 맡게 된 것이 '헤이리'라고 하는 문화예술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헤아려보니 그것은 표현방법만 다를 뿐 국토 위에 한권의 거대한 책을 기획해내는 일이랄 수 있었다. 미술.음악.영화.연극.출판 등 여러 장르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도시, 대안의 공간을 실험하는 일이라니 얼마나 가슴 뛰는가.
결국 나는 내 삶의 시발점이며 현재 딛고 서있는 자리 모두 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