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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에 대한 높은 안목을…가짜분유와 주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불량분유를 밀조해서 팔다가 적발되어 말썽이다. 가축사료용밖에 안되는 썩은 감잣가루를 어린아이들에게 먹이게 했다고 가정주부들의 분노가 크다. 더구나 이런 가짜분유가 떳떳이 상표를 붙이고 6년간이나 팔렸다는 사실에 식풍감독청에 대한 푸념들이 대단하다. 그러나 불량분유를 만든 업자나 이것을 감독 못한 당국을 비난하기에 앞서 소비자 자신들이 상품에 대한 높은 안목을 갖지 못하고 둔감해 있었음을 자각해야 할 단계가 아닐까.
외국에서는 벌써 1930년대에 소비자들이 각성해서 불량상풍에 속지 않고 싼 값에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상품을 「테스트」하는 자치기관을 만들어 냈다. 미국이 경제공황으로 사회가 불안했던 1929년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던 것이 바로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는가」라는 책이었다. 그후 이 책의 저자인 「E·J·쉐링크」씨를 회장으로 「소비자교육연구소」를 세워 모든 생산품에 대한 질·성능 등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연구, 분석해서 책자에 실어 발표해줌으로써 일반 소비자에게 상품에 대한 지식과 상품구입의 기법을 교육해 왔다.
처음에는 「메이커」와의 사이에 고소사건이 발생하는 등 잡음이 있었으나 차츰 생산업자들도 협조하게 되었고 소비자들은 속지 않고 싼값에 좋은 상품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에는 절대 중립을 지키고 상품의 「테스트」결과를 발표하는 「컨슈머·리포트」가 1백만부나 팔리고 있다. 영국에도 미국의 「컨슈머·리포트」에 상대되는 「호이체」가 발간되고 매월 3천의 독자가 늘고 있다. 한편 「소비자자문위원회」를 두고 「쇼퍼스·가이드」(소비자 안내지)를 내고 있어 보다 현명한 소비자로서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서독에는 AGV(독일소비자동맹)에서 4개의 정기간행물을 내고, 「주부동맹」에서 직접 주부자신들의 힘으로 상품 「테스트」를 하고 있으며, 「스위스」에는 SIH(스위스가정연구소)에서 소비자와 「메이커」가 공동출자로 과학적 방법의 가장 근대적 상품 「테스트」를 하고 있고, 불란서에서는 「소비자동맹」에서 제3국인 화란에 상품 「테스트」를 위탁해서 발표해주고 있으며, 이태리는 「전국소비자동맹」을 두고 상품안내서를 내서 사실상 광고비 없이 상품의 광고를 해주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국가관리 하에 통상성에서 「소비자」라는 잡지를 내고 있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도 이러한 소비자협회를 갖고 있다.
한편 국제적으로도 「국제소비자협회」(제3국의 물품을 「테스트」한다)가 있으나 동양에서는 일본만 이에 가입해있다. 그들은 이러한 조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코 불량상품에 멍청하게 속지 않는다. 따라서 생산계는 소비자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품질향상에 노력해오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라디오」·「텔리비전」·신문 등 「매스콤」의 발달은 어느 나라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매스콤」을 통한 「메이커」들의 선전에 따르는 상품의 기능, 가격을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대부분 상품는 「메이커」의 일방적인 선전에만 맡기고 있을 뿐 소비자들이 상품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제도가 없고, 상품을 「테스트」한 결과의 「데이터」도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정부가 품질을 보증한다는 「KS마크」라든지 기타 정부에서 수여한 「상」패를 가진 상품을 믿고 쓰는 실정이다. 이러한 것은 소비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서 주어진 것이므로 다만 객관적인 보증의 역할을 할 뿐 소비자 자신의 자치능력을 결여시키는 결과가 된다. 소비조합이 생겼지만 「메이커」들의 횡포에 대항할 기관은 없다.
또 근래 「여성소비조합」이 창설되었으나 아직은 규모가 작고 큰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한국생산성본부내의 소비자안내소에서 64년부터 상품 「테스트」를 해서 그 결과를 4·6배판의 조그만 책자에 발표하고 있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가짜 분유와 같은 상품에 또 한번 속지 않으려면 앞으로 소비자 스스로가 상품「테스트」기관을 만들어 광고나 「스폰서」를 두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상품의 성능과 성분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발표하는 책자를 발행하는 일이다. 가정주부들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해서 동인지와 같은 책자를 냄으로써 주부들은 보다 현명한 소비자로서의 지식을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되고 「메이커」들도 선전보다 질 좋은 상품을 만드는데 더욱 노력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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