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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보는 김성근 … 야구가 보이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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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기발한 훈련법을 도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엔 배구 서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김 감독이 지난달 서귀포 강창학구장에서 진행된 훈련을 바라보고 있다. [서귀포=정시종 기자]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김성근(70) 감독은 최근 프로배구 경기 중계를 즐겨 본다. 배구를 보며 야구를 생각하기 위해서다. 그의 눈을 사로잡는 장면은 선수들의 서브 동작이다. 김 감독은 “배구 선수들이 서브를 할 때 ‘공을 잘 다룬다’라는 생각이 든다. 공을 때리는 부분을 택해 회전수를 조절하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공의 크기와 무게 등이 다르지만 야구와 배구 두 종목을 관통하는 원리가 있다”면서 “배구 서브를 통해 공의 회전력과 방향 변화에 대해 투수에게 얘기하고, 타자들도 공의 어느 부분을 치느냐에 따라 비거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은 변화로 큰 흐름을 잡는 것. 이건 김 감독의 ‘1㎝-30㎝의 야구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수비수가 옆을 빠져나가는 타구를 하루에 1㎝씩 따라가는 훈련을 겨울 동안 한다면 시즌 시작 때 수비폭은 30㎝까지 넓어진다. 주자들도 마찬가지다. 오늘 1㎝ 더 가면 나중엔 30㎝를 더 달릴 수 있다”며 “한 시즌에 10경기가 30㎝의 차이로 승패가 바뀐다. 10패가 10승이 되면 하위권 팀은 상위권 팀이 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만약 투수가 30㎝ 더 떨어지거나 휘는 공을 던질 수 있다면 어떻겠는가. 확실한 (승률이 높은) 야구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배구 선수들은 서브에서 30㎝의 변화를 노리는 것 같다”고 했다.

 조만간 배구공이 원더스 훈련장에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김 감독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엉뚱한 도구를 동원해 야구 훈련에 적용하는 걸 즐기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국 유학 중인 고교생 투수가 김 감독을 찾았다. 열흘 동안 김 감독에게 야구를 배운 그는 지난 18일 출국하며 “미국에서는 어떤 훈련을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김 감독은 “넌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던지는 팔이 아래로 처진 채 나온다. 부상 우려가 있다”면서 “손이 머리 뒤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기분으로 나오면 공의 회전력이 커지고 던질 때 힘도 덜 든다”고 조언했다.

 이어 김 감독은 배드민턴 훈련법을 권했다. 그는 “셔틀콕을 머리 위로 던지고 라켓으로 치는 훈련을 하면 나쁜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다. 테니스 라켓으로 하면 안 된다. 배드민턴 라켓보다 무겁기 때문에 팔꿈치나 어깨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원더스 선수들은 1년 전 망치와 곡괭이로 타격 훈련을 했다. 당시 김 감독은 “망치로 못을 박는 것과 타격은 원리와 같다. 각도만 다를 뿐이다. 망치질을 통해 타격 때 팔꿈치 사용법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곡괭이질은 타격 밸런스를 키우기 위한 방안이다. 김 감독은 “무거운 곡괭이를 통해 힘을 모아서 쓰는 법, 자세를 유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야구밖에 모르는 야구 장인(匠人) 김 감독은 때로 야구 밖으로 나간다. 다른 관점으로 야구를 보기 위해서다.

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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