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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맹 흔들|화전파의 대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마지막 한사람까지 싸우겠다는 공산월맹의 핏발 돋친 공갈에도 불구하고 월맹 지도층 내부에는 철저 항전파 (친 중공파)와 평화 협상파 (친소파)의 대립이 점차 노골화하여가고 있는 듯한 조짐이 엿보이는 것은 미국의 북폭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초조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월맹 지도층 안에는 중·소 대립의 축소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친중공 강경파와 친소 온건파가 도사리고 서로 자기 파의 세력 확장을 위한 암투를 벌여왔다는 것은 단편적일망정 벌써부터 서방 세계에 알려진 사실이나 월맹 내에 평화 협상파가 자리의 한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까놓고 시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미국정부로서는 월맹에 평화론자가 있다는 월맹공산간부 「레·둑·토」의 폭로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눈치가 역연하나 그렇다고 월맹이 가까운 장래에 협상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이를 보는 것은 시기상조의 감이 있다. 친소적인 협상파의 발판이 친중공파를 옭아맬 수 있을 만큼 강한지 어떤지 전혀 미지수에 속하기 때문이다.
친중공파에 속한 재치 있는 이론가란 정평이 있는 「레·둑·토」의 발언을 가리켜 평화론자들을 항전파로 세뇌시키는 대열을 강화하려는 「제스처」라고 경계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그들로 하여금 백가쟁명을 부르짖게 하여 모조리 숙청하려는 잔재주라고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공과의 숙명적인 지리적 관계에 재빨리 착안, 호지명의 사후의 자리에 눈독을 들인 「레·듀안」노동당 제일서기를 정점으로 하는 항전파는 「촌·친」전제1서기, 「레·탄·기」부수상, 「구엔·도이·친」외상과 당이론가「레·둑·토」를 중심으로 입버릇처럼 잘도 튀어나오는 「최후의 일인까지」란 옥쇄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협상파의 주장에는 겉으로는 강경한 체 하나 속으로는 암처럼 커지는 고민덩어리를 안고 있는 호지명 대통령을 엄지손가락에 꼽는데 인색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판·박·둥」수상과 부수상·국방상에다 월맹 인민군 총사령관의 요직을 겸하고 있는 「지아프」가 이른바 협상파의 핵심 분자들로 알려져 있다.
월맹 내부의 항전, 협상파 대립이 소·중공 대립의 축소판이라면 전쟁의 제일당사자인 월남민족 해방 전선 (NLF)에서도 월맹내의 양파 대립을 좁혀놓은 것 같은 파벌이 없지 않다는 말이 심심찮게 떠돌고 있다. 언젠가 주소 NLF수석 대표 대리 「구엔·반·돈」이 『우리는 미국에 대해 평화 교섭의 상대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는 있으나 회담전에 미군의 월남 철수 따위를 조르지는 않는다. 우리와 중공과의 관계는 매우 긴장되어 있다』고 말하여 NLF 안팎을 발칵 뒤집어 놓은바 있음은 그 단적인 예인 것이다.
작년 8월 「볼」미 국무차관이 「드·골」대통령과 회견차 「파리」를 들렀을 때 월맹공산당의 대표단이 「파리」를 찾은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아 넘기기에는 너무나 우연인 것이다.
더구나 오는 3월29일의 소련 공산당 제23차 회의를 계기로 그동안 몇해를 두고 으르렁거리던 중·소가 완전히 결별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고 보면 월맹내의 강·온파 대립도 어쩔 수 없이 악화의 길을 더듬을지 모른다.
오월동주격으로 항전파와 협상파를 한울 안에 안고 있는 월맹이 중·소의 화해를 위해 가래톳이 날만큼 동분서주하여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월맹내부에서의 친소파와 친중공파의 파쟁을 월남사태의 새로운 요소로 중시하고 앞으로의 미국의 정책을 월맹의 온건파인 「평화론자」들의 사기를 돋우는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는 「워싱턴·포스트」지의 논조는 미국 정부의 견해를 대변해주는 것과 같은 것이라 평해도 무방한 것이다.
이렇듯 월맹 기관지 「난단」에 발표된 「레·둑·토」의 「평화주의파 대두론」이 미치는 영향은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을 만큼 크다. 「존슨」 대통령이 월맹 폭격 대상에서 「하노이」·「하이퐁」을 살짝 빼돌려 「성역」으로 신성화하고 있는 속셈도 점차 지보를 굳히기 시작한 월맹내의 평화 협조론자들을 고무하려는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에는 귀담아 들을만한 가치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평화 협상자들이 협상을 부르짖는다 해도 월맹의 성격상 넘지 못할 한계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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