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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빛낸 선수] 두 얼굴의 '야누스', 스토이치코프(1)

중앙일보

입력

지금 미국프로축구리그(MLS)에서는 MLS컵 준결승전이 한창 벌이지고 있다.

준결승에 오른 4팀 중의 하나인 시카고 파이어(Chicago Fire)클럽에는 진기한 경력의 소유자가 나이도 잊은 채 미드필드를 누비고 있다.

은퇴한 후 한때 축구 지도자로 화려한 변신을 꾀했다가 다시 축구화 끈을 조여매고 그라운드로 복귀, 자신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꿈꾸며 홈구장 소울저 필드(Soldier Field)를 종횡무진 누비는 베테랑 골게터.

바로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불가리아를 4강에 올려놓으며 골든슈(6골, 득점왕)를 차지했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Hristo Stoitchkov, 35)다.

자로 잰듯한 그의 왼발 프리킥은 상대 골키퍼들은 물론 지켜보는 팬들마저도 숨을 죽이게 만들었고 환상적인 드리블에 이어 움직이는 상황에서 터지는 슈팅은 왠만한 선수의 정지된 상황에서의 그것보다 더 높은 명중률을 자랑했다. 한마디로 '특등 저격수'같은 존재.

하지만 뛰어난 축구 재능에 비해 스토이치코프는 가는 곳마다 심판, 구단, 그리고 감독 등과 끊이지않는 마찰을 일으켜 일명 '미친 녀석(Crazy Boy)'혹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 등 부정적인 의미의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 보자. 그러한 돌출적인 행동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 바로 특유의 강한 기질이 바로 세계적인 축구 스타 스토이치코프를 낳게 해 준 밑거름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의 강한 근성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1966년 2월 8일 불가리아의 플로프디프에서 출생한 스토이치코프는 10살되던 76년 마리챠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플로프디프 체육학교로의 진학을 원했지만 실패했다. 82년 헤브로스클럽으로 팀을 옮겼고 그는 숨은 기량을 맘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헤브로스에서 맹활약할 당시 플레벤에서 개최된 시합에서 그의 환상적인 실력에 매력을 느낀 두나프클럽의 훌리건들이 그를 군용 지프차로 납치하는 어이없는 소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불가리아 정규군 축구 클럽인 CSKA 소피아가 스토이치코프를 소피아로 보내주지 않으면 납치범들을 평생토록 예비군으로 전환하겠다는 위협을 가했고 그 결과 18살되던 84년에 스토이치코프는 불가리아 축구 명문인 소피아클럽과 기이한(?)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 무렵 어린 스토이치코프의 도전적인 성격을 나타내주는 재미난 일화가 있다. CSKA 소피아의 감독이자 불가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이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감독이 그를 보고 "너 누구냐?"라고 물었다. 이 때 그는 "난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입니다. 그러는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19살이던 85년 트라키아전에서 첫 출장한 그는 불가리아 FA컵 결승전 레프스키 소피아전에서 수비수와의 격투로 인해 1년간 출장 정지를 겪기도 했고 바로셀로나로 이적하기 직전인 90년에는 30게임에 출장 38골을 터트리는 등 총 5년간 81득점을 기록하며 소피아를 리그 3회 우승, FA컵 4회 우승을 달성케 한 히어로였다.

축구선수들에겐 꿈의 '엘도라도'인 프리메라리가의 바르셀로나로 환경을 바꾼 이후에도 그의 다혈질적인 성격은 수그러들지 않았다.심판진에 대한 불경한 행동으로 인해 3달간 출장정지를 겪기도 했으며 요한 크루이프감독과 누네스 바르셀로나 구단주와도 마찰을 일으키는 등 그의 선천적인 악동 기질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 기량의 선수들만이 설 수 있는 그라운드에서 적자생존의 법칙을 터득한 그는 91-92시즌에 17골, 92-93시즌에 20골, 93-94시즌에 16골을 터트리는 맹활약으로 팀을 이끌며 바로셀로나를 스페인리그에서 3회나 우승시킨다. 스페인에서 스토이치코프는 피딩 능력과 득점 능력을 고루 갖춘 최고의 선수로 도약하게 된다.

그가 프리메라리가 최고의 선수에서 전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계기가 바로 1994년 미국에서 개최된 제15회 월드컵. 불가리아 대표로 대회에 출전한 그는 '미친 녀석(Crazy Boy)'이라는 오명을 떼내고 '왼발의 달인'이라는 근사한 수식어를 이름앞에 붙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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