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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넘버·원」의 퇴진 김영기 선수의 은퇴 주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아세아 남자농구의 「스타·플레이어」로 한국 농구를 몸으로 대변해 준 김영기(30·기은)선수는 13년간의 선수생활을 청산하고 현역에서 은퇴한다.
제20회 전국남녀종합선수권 대회를 마지막으로 하여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한 김영기 선수는 그가 소속해 있는 은행측이나 동료들, 많은 선배 농구인들의 만류를 받았으나 『벌써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렸던 제3회 아세아선수권대회 이전에 은퇴하여 했었으나 협회의 만류로 부득이 종합 선수권 대회에까지 출전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은퇴의사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면서 기은 농구부가 보강되는대로 한1년 동안 「팀」을 떠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농구 선수로서는 작은 체구-1백75「센티」의 「핸디캡」을 두뇌로 극복하면서 번개같이 움직여 「골」밑을 깊숙이 파고드는 그의 「드리볼」은 아세아에서 찾아보기 드문 신기에 가까운 것이고 1, 2회 아세아 선수권 대회에는 체육기자들이 선출한 최우수선수로 선출되어 50년래의 드문 선수로 아세아의 제1인자였다.
53년 배재고등학교 2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김 선수는 고대, 공군, 농은을 거쳐 기은에서 3년째, 현재 그의 동료선수들은 모두 현역을 물러나고 있어 지금의 은퇴는 약간 뒤늦은 느낌이 없지 않으나 벌써부터 계획했던 것이라고.
13년간의 선수생활을 통해 7백여 시합에 출전한 김 선수는 약2만대에 달하는 개인득점을 올렸고 「게임」당 그의 평균득점은 25점. 「멜보론」과 동경「올림픽」 두 차례의 「올림픽」과 세 차례의 아세아 선수권 대회 등 15회의 국제대회 훈련은 화려했던 그의 선수생활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었고 두 차례의 대한 체육회 최우수선수상과 서울신문이 수여하는 한국체육상도 두 번, 국내 선수로서는 영광의 길만을 줄달음했다.
김 선수의 은퇴를 적극 만류하면서 이를 애석하게 생각하는 농구협회는 그의「백·넘버」6번을 기념하여 앞으로 한국 대표 선수단엔 6번을 결번으로 남겨 놓을 방침이다. <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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