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가 책 출간 화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미국 'MIT(매사추세츠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 프레스'는 건축을 비롯해 미술사학.철학.언어학.경제학 분야에서 권위를 자랑하며 필자 고르기가 까다롭기로 이름난 세계적인 학술 출판사다.

최근 이 MIT 프레스가 한국 건축학자의 책 한 권을 출판해 우리 건축계에 경사가 되고 있다. 화제가 된 주인공은 '포트폴리오와 다이아그램'의 배형민(42.사진)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

배 교수가 1990년대 초 MIT에 유학했을 때 쓴 박사학위 논문에 주목한 출판부가 출판 계약을 제안한 지 8년여 만에 여러 차례 수정보완한 두툼한 전문서적으로 선을 보였다.

'포트폴리오…'은 한마디로 건축가들이 활용해온 책(자료)읽기의 역사다. 뉴미디어 시대에 대중들이 읽는 문자 정보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달라지듯이, 건축가가 작업을 위해 참고하는 각종 도집(포트폴리오).문서.그림.사진 등 '건축의 담론'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세기 건축가들은 예부터 전해오는 평면도와 입면도 등 건물 그림을 도집을 통해 모사하면서 그 전례를 규범 삼아 설계를 배웠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는 이런 본뜨기 훈련보다는 사회와 건축주의 요구를 직접 수용하는 '다이아그램'이라는 새로운 담론이 주요 흐름이 되었다. 집짓기가 역사적인 양식이나 기존 건축가들의 편견에서 출발해서는 안된다는 현대건축의 이념 때문이었다.

배교수는 이 '건축 담론'의 변화가 "과연 건축을 대중들에게 더 가깝게 만들었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더 좋은 건축인가"를 묻고 있다. 답은 쉽지 않다. '포트폴리오…'이 말하고자 하는 통찰이 여기서 출발한다.

문화예술의 여러 분야 가운데 일반 대중이 가장 어렵다고 여기는 것이 건축이라고들 하는데, 그 원인이 꼭 특정한 건축 지식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건축가가 자신만의 시각을 지니고 지상에 다시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건축 행위 자체가 심오하고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에, 건축이 가장 사회적인 예술이라 할지라도 건축주나 대중을 위해 쉬워져야 할 까닭은 없다는 것이 배교수의 생각이다.

따라서 건축을 하는 목적은 사회와 공유해야겠지만, 건축을 하는 방법은 건축가 나름의 가치를 창출하는 개인적인 과정으로 남는다.

배교수는 "'포트폴리오…'을 통해 글과 이미지를 다루는 건축의 독특한 세계관을 깊이있게 고찰하고 싶었다"며 "이 연구가 결국 현대인과 그들이 사용하는 미디어와의 관계까지를 보여주게 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정재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