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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산대로 유릉에 합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 왕조 최후의 왕비로 설움과 외로움으로 평생을 지내고 한 많은 세상을 등진 순정효황후 윤씨의 재궁은 13일 상오10시30분 낙선재의 영효전을 벗어나 금곡 유릉에 이르는 연도의 수십만에 가까운 애도의 인파를 뚫고 유택에 도착, 이날 하오3시 유릉의 부왕 순종 곁에 고이 묻혔다. 이날 장례는 옛 황후의 인산모습 그대로 엄수되었다.
상오8시 정든 석복헌에서 유전의(고별인사)를 마친 윤 황후의 재궁은 상주 이구씨와 유복친 7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대여로 옮겨졌다.
흰 광목이 깔려 있는 대여까지의 길목을 재궁은「헌의자인 순정효황후 재궁」이라 쓰여있는 명정을 앞세우고, 육·해·공군의 장병 16명의 손에 들려 경건하게 옮겨질 때 방자여사와 이구씨의 부인「줄리어」여사 및 상궁 등 여자 유복친들은 슬픔에 흐느꼈다.
9시40분 대여 앞에 영정을 모시고 유례의(영결식)가 진행되었다. 이날 따라 날씨도 흐려 흰 눈발을 흩날릴 것 같았지만 기온은 영상4도.
상오10시30분 대여는 돈화문을 출발, 종로3가를 거쳐 종묘 앞에서 잠깐 멈춰 선조에게 하직을 고한 다음 동대문, 신설동「로터리」에 이르러 「노제」를 지낼 예정이었으나 밀어닥친 무질서한 사람들의 물결로 제단이 무너지는 소동 끝에 결국 「노제」조차 지내지 못하고 그대로 청량리에 이르러 자동차로 유택인 유릉이 있는 금곡으로 향했다.
종로3가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거리는 돈화문 앞보다 훨씬 많은 인파로 양쪽 길은 꽉 메워져 있었고 이 장의행렬을 구경하려는 인파로 상가는 거의 철시상태였으며 늙은이 어린이까지 겹친 인파는 부상, 소매치기, 미아소동 등으로 아우성-.
이날 거리의 인파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고 무질서한 인파는 이씨 왕조의 마지막 황후의 마지막 행렬을 도리어 욕되게 하는 듯 하였다.
하오1시 행렬은 청량리를 지나자 도보 행렬자를 전부 차에 태워 정비한 다음 금곡을 향해 경춘가도를 달렸다. 1시40분 유릉에 도착한 재궁은 홍문 앞에서 12명의 의장병에 의해 운반, 아악이 울리는 가운데 의장병 30명이 양쪽에서 집총한 가운데를 통과, 천전되었다.
하오4시 순종황제 가신지 만40년만에 그 곁으로 가는 하관의식인 하현궁이 진행되는 동안 검은 구름이 낮게 가라앉았던 하늘에서는 진눈깨비가 조용히 내렸다.
하현궁이 끝나자 위패를 모시는 입주전이 거행되고 5시에 첫 제사인 초우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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