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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정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첫 아이를 본 우리들 부부는 아이 이름 때문에 조그만 시비가 벌어졌다. 아빠는 꼭 돌림자를 넣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 돌림자가 바위 암자다. 그래서 아빠는 순할 순자 바위암자 「순암」이로 하자는 것이다.
나는 계집애의 이름에 하필이면 바위암자는 뭐고, 돌림자를 꼭 붙여야 할 이유는 뭐냐고, 부르기 쉽고 예쁜, 난초 난자 계집 희자「난희」로 하자는 것. 이래저래 손해를 보는건 우리들 귀여운 아기가 아닌가 해서 서로 타협을 본 것이 시골에 계시는 시아버님께 작명의뢰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피차 휴전이 될 뿐만 아니라 손녀 이름을 지으시게 될 시아버님의 환심도 사게 되는 일거양득이 아니냐는 뜻에서다.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적어서 편지를 썼다. 기왕에 맺은 아빠와의 신사협정이기 때문에 시아버님의 판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초조한 어느 날 진기한, 그러나 명문인 판결문(?)을 받아보고 나의 판정승을 확인했다.
『내가 뭘 알겠능고. 신식인 너희들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여아 이름으로는 아무래도 순암보다는 난희가 낫겠구나. 요새 세상은 부모의 권리란 자녀들의 이름지어주는 것밖에 없다더구나. 옛날과 달라서 키우기가 바쁘게 제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아니냐?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불릴 이름이니 아무쪼록 둘이서 상의하여 좋도록 해라.』 <김일화·광주시 서석동471의11 오성록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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