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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숙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약혼한 남녀 사이의 성급한 교재로 해서 잃어진 여자의 처녀성의 댓가는 남녀가 똑같이 나누어 물어야 한다는 판시가 있었다. 이것은 정조의 근대화를 향한 한 걸음 전진이다. 고래의 미풍이니 순풍 미속이니 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안 된 일이지만, 그들의 시대 감각이 미처 쫓아가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여자의 정조관은 지난 20년 동안에 조용히 변모해왔다.
딱 까놓고 얘기하면,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우리 고래의 미풍은 남자가 여자를 범하는 것은 더 그렇게 보아주고, 정조를 잃은 여자에겐 돌팔매질을 했다. 이따위 미풍이란 민주성대에 살려 둘 수 없는 것이어서, 부산 피난 시절에 형법을 고칠 때 쌍벌죄라는 것이 생겼다.
그러나 쌍벌제가 생겼다고, 여자의 정조가 반드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여자는 원래가 연약한 갈대여서 남자의 횡포에는 대항할 도리가 없다는, 일종의 패배주의가 청산되야 한다. 서로 뜻이 맞아서 성교를 맺고 난 여자가 성교 후에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헛되이 바친 처녀성의 대가를 남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패배주의의 표본-얼른 보기엔 무슨 대단한 신여성 같은 수작이지만 기실 전세기의 유물이다.
왕년의 탕아 박인수의 행각이 생각난다. 법은 보호 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유명한 판결은 탕아의 방종을 두둔한 것이 아니라, 여자도 그의 정조를 두고 남자와 대등하게 대결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여자가 정조를 「잃었다」 또는 「빼앗겼다」는 말은 이젠 아무도 고지 듣지 않게 되어서 우리의 정조관이 한결 근대화한 것이다.
정조관은 사회마다 다르고 근대, 후진을 따질 기준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간통이 이혼의 이유가 될 수 있을 뿐, 쌍벌이고 단벌이고 간에 어떤 범죄로서 다스리지 않기로한 나라가 있고, 대학 구내에 피임도구 자동 판매기를 장치해놓은 나라도 있다. 가까운 장래에 우리가 그런 지경에 이를 걱정은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그러나 우리의 정조관만은 앞으로 더욱, 그러나 조용히 변모를 거듭 할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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