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목수 요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0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촛불을 든 아이 얼굴이 한없이 앳되다. 노인은 나무를 깎으며 아이를 곁눈질한다. 두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림의 제목이 말해준다. ‘목수 성 요셉(St. Joseph the Carpenter)’. 가장 유명한 의붓아버지일 요셉과, 가업을 돕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다. 아들을 지그시 쳐다보는 아버지의 눈빛이 새삼 복잡해 보인다. 루브르의 수십만 소장품 중 이 그림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버지 요셉의 존재를 새삼 부각했기 때문일 거다. 요셉이 이토록 비중 있게 나타난 그림은 흔치 않다. 성탄이나 성가족(聖家族)을 주제로 한 그림에서도 아버지 요셉은 그림 뒤편에 그림자처럼, 배경처럼 나올 뿐이다. 성모자상(聖母子像)은 흔해도 성부자상은 없다. 성부(聖父)는 하나님이지, 요셉이 아니니까.

 성경에서는 요셉을 그저 “의로운 사람”이라고만 적고 있다. 정혼자의 임신 사실을 알고도 결혼했으며, 충실히 아버지 노릇을 했다. 아내의 출산을 돕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마구간을 찾고, 영아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떠나고, 소년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는 것으로 그의 역할은 일단락된다.

조르주 드 라투르, 목수 성 요셉, 1635~40, 캔버스에 유채, 137×101㎝, 루브르 박물관 소장.

 그 때문에 성화에서 요셉은 주로 노인의 모습이다. 동정녀 마리아의 처녀성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다. 초기 기독교 시절인 2세기 무렵의 한 외경은 심지어 요셉이 111세 때 18세인 예수 곁에서 숨졌다고 적고 있다. 또 예수의 형제들은 요셉이 첫 결혼 때 낳은 배다른 자식들이라고 기술되기도 했다. 요셉은 14세기에 비로소 성인으로 부각된다. 기근과 백년전쟁, 흑사병으로 교회와 가정이 극도로 피폐한 때였다. 요셉의 가장으로서의 면모가 재조명됐다. 성가족은 또한 모범적 가정의 전형이 됐다. 예수 탄생 때 요셉의 나이도 36세로 다시 계산됐다. 요즘 한국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보다 네 살 많다.

 다시 그림을 들여다본다. 소년 예수의 모습도 성화에선 흔치 않다. 성자(聖子)의 얼굴을 후광이 아닌 촛불이 밝히고 있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곧 빛이다. 촛불을 둘러싼 이 따뜻한 드라마에는 소박한 공방에서 제 몸과 손을 써서 일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눈맞춤이 있다. 그림 속 예수와 요셉은 서로의 처지를 연민하는 것 같다. 그게 가족애의 출발점일 거다. 이 부성은, 후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게 될 아들의 운명을 예감한 듯하다. 목수 아버지가 조용히 깎는 나무토막은 십자가를 닮았다.

신이 인간과 가까워지는 때,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빨간 자선냄비, 산타와 캐럴, 성가족, 이 모두가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서로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