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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 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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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막이 내렸다. 장내엔 박수소리가 고요히 물결친다. 이제 연극은 끝난 것이다. 배우들은 분장한 그대로 무대에 나와 정중히 인사를 했다. 화려한 미소를 지으며…. 그러나 그 화려한 무대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객석. 거기엔 연극의 등장인물보다 더 적은 수의 「손님」들이 앉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또 한번 막을 내린다―.
『차라리 고독은 외롭지 않다』고 젊은 연기자 K군은 말한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다. 전통도, 광장도, 그리고 모국어(작품)도…. 오직 하나있다면 보상마저 기대할 수 없는 「젊은 의지」 뿐이다』
연극에는 제2세대가 없다. 권위의식과 「리얼리즘」에의 향수를 저버리지 못하는 제1세대에서 그대로 급강하― 반극과 시극·서사극 등 새로운 극술의 실험실로 뛰어든 제3세대만 있다.
징검다리조차 없는 이 「세대의 격차」가 오늘날 우리 연극의 혼란을 빚어냈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그러나 젊은 극작가 C군은 말한다.
『반발이라구요? 누구에게 반발합니까? 그나마 비벼댈 「언덕」이 있는 소는 행복한 놈이죠. 우리에겐 「언덕」이 없어요』 세계고전희곡집하나 변변히 읽지 못하고 극작에 손을 댔다는 그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쓰는 것』이라 했다. 분명히 「제 나름대로」다. 반극이나 서사극을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해낸다. 누구에게 물을 필요도, 가르쳐 줄 사람도 없다.
그리고 대부분 그 종착역엔 언제나 「시행착오」란 간판이 붙어있게 마련이다. 물론 성공을 기대한 것도 아니다.
이젠 실험극연출의 「베테랑」이 된 J씨는 재래의 「리얼리즘」극에 대해서는 극히 비판적이지만, 그러나 젊은 세대들에 대해서는 낙관적이다. 『무대에 「생나무」를 베어다 꽂았다구해서 「리얼리즘」이 되는 것은 아니다. 「리얼리즘」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우리의 선배들은 아직도 그 「곡해의 숲」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이미 그 숲을 빠져 나와 강을 건너고 있다. 그게 탁류 건 격류건 간에 꼭 건너야할 강을….』 60년 젊은 연극인들의 모임인 「실험극단」이 탄생하고부터 싹트기 시작한 전위극도 이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때로는 빗발치는 화살을, 때로는 따뜻한 호응을 받으면서 이들 「젊은 세대」는 횡적으로도, 종적으로도 텅 빈 광장에서 탈바꿈을 해왔다.
그러나 시계는 「제로」였다. 「우리의 생활」 「우리의 소리」가 없기 때문이리라.
J씨는 말을 잇는다. 『밖으로만 눈을 팔던 그들도 이젠 「우리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번역극에서 창작극을 찾고, 전위극에서 전통극― 이를테면 「판소리」와 「탈춤」같은데 관심을 쏟고 있다』
제3세대는 새 연극의 여명을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나긴 동면에서 잠을 깨는….
말을 알아들을 때부터 연극 속에 자라, 미국서 연극으로 석사「코스」까지 받고 작년에 돌아온 유인형 양은 겸손하나마 저력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의 연극도 이젠 탈피기에 접어든 것 같아요. 경제적 여유도 중요하죠. 하지만 연극을 하나의 「상품」으로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고객을 끌자면 보다 완벽하게 가다듬어야 하잖겠어요. 정신적으로라도 말 이예요』― 그녀는 타성처럼 된 연극에 대한 「어프로치」의 수정 없이는 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우선 그 짧은 연습기간만해도 기성이라고 안나오거나 늦게 나오고, 또 연기자는 자기의 개성을 살리기 보다 연출자에 매달리고….
『연극은 「심퍼니」와 같은 거예요. 「컨덕터」가 어떻게 일일이 「사인」을 줄 수 있겠어요』
이대영문과를 졸업하고 60년에 도미, 「베일즈」대학과 「댈러스」 연극「센터」에서 이론은 물론 무대출연의 경험까지 쌓은 그녀에겐 「철저」가 몸에 배었다.
『서구적인 양식에 우리의 것을 담는 작업이 있어야겠어요. 연극은 생활의 축도인데 남의 것 가지고 소화가 제대로 되겠어요. 제3세대의 연극은 우리 스스로가 창조하는 것 이예요』 ― 극 계의 원로 유치진씨가 아버지이기도 한 그녀의 「작업」은 보다 무겁고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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