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영화도 방영 … 베이징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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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브이 포 벤데타 포스터

중국 관영 중앙TV(CC-TV)가 정부를 비판하고 시민혁명을 정당화하는 영화를 방영했다. 1949년 중국 공산정권 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앞으로 언론이나 인민들의 정부 비판을 수용하겠다는 신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영화채널인 CC-TV6는 16일 밤 ‘브이 포 벤데타’라는 영화를 ‘V자 별동대’라는 제목으로 내보냈다. 영화 배경은 제3차 세계대전이다. 전쟁 후 영국에 들어선 절대권력에 대한 시민의 저항과 시민혁명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같은 저항과 혁명은 신출귀몰한 가면의 사나이 ‘V’가 이끈다. 영화 대사에는 “인민은 반드시 정부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반드시 인민을 무서워해야 한다”는 내용이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방영됐다. 누가 봐도 절대권력은 중국 공산당, 인민은 중국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사에는 또 “가면은 일종의 사상, 사상은 총탄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 취임 후 중국사회에서 일고 있는 ‘개혁’을 ‘가면의 사상’에 비유해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영화에는 중국인을 향한 외침도 있다. 예컨대 ‘V’는 영국 시민을 향해 “당신들이 지금까지 ‘반대’의 자유를 누려본 적이 있는가.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있었던가. 현재 여러분을 압박하고 있는 것은 감독제도와 감시 시스템 아닌가”라며 시민혁명을 유도한다. 사실상 중국사회 현실을 고발하고 중국인에게 공산당이나 정부에 대해 반대를 말하고 자유를 외치라고 부추기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V’가 중국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시 총서기를 지칭하는 것 같다는 해석도 나온다.

 홍콩의 동방일보(東方日報)는 17일 “영화채널인 CC-TV6는 다른 채널과 달리 CC-TV 본사 통제를 받지 않고 중국의 모든 언론을 감시·통제하는 광전총국(廣電總局) 직속이기 때문에 당의 허가 없이 이처럼 민감한 내용이 포함된 영화가 방송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언론과 선전을 총괄하는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의 허가를 받았으므로 언론자유를 위한 단계적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익명의 중국 내부 분석가는 “이번 사건은 당이 일단 영화부문에서 검열을 대폭 완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모든 (언론 관련) 검열을 없애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언론자유로의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가상의 제3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 들어선 절대권력을 시민혁명으로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루며 세계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내용. ‘V’라는 이니셜로 알려진 가면의 협객영웅이 시민혁명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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