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기존 치료제보다 부작용 적고 값싼 ‘신약’임상 결과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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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차 미국혈액학회(ASH2012)에서 동아대병원 김성현 교수가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백혈병 표적항암제 슈펙트의 임상2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제약업계에도 한류 바람이 가능할까. 지난 8~11일(현지 시각) 미국 애틀랜타 조지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4차 미국혈액학회(ASH2012)에선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 시작됐다. 세계 혈액종양 전문의와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 88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우리나라 연구진이 개발한 백혈병 표적항암제 슈펙트(성분명 라도티닙, 일양약품·대웅제약)의 임상2상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특히 국내 제품은 기존 다국적 제약사가 안고 있는 약의 내성과 비싼 약가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임상시험을 주도한 서울성모병원 김동욱(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세계 학회에 국내 신약이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세계 백혈병 환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권 시장을 시작으로 글로벌 신약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라고 말했다.

표적항암제 이용한 새 치료법

현재 세계 백혈병 표적항암제 시장은 약 50억 달러(5조5000억)에 이른다. 글리벡·타시그나(노바티스), 스프라이셀(BMS) 등 미국·유럽 계열 다국적 제약사 제품이 독점한다. 표적항암제는 암세포의 신호전달체계를 차단해 암 덩어리만을 공격한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를 이용한 백혈병 치료법과 지표’ 세션에선 일본·이탈리아·오스트레일리아 등 5개 연구팀이 표적항암제를 이용한 새로운 연구 지표를 발표했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의 티머시 휴즈 연구팀이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의 역사를 바꾼 최초 표적항암제인 이매티닙(글리벡)의 초기 용량을 늘리는 치료법과 이 약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에게 닐로티닙(타시그나)을 대체 처방하는 치료법을 발표할 때 세계 혈액전문가의 질문과 관심이 쏟아졌다.

국산 신약 부작용 적고, 효과 높아

동아대병원 김성현(혈액종양내과) 교수가 발표한 슈펙트 치료법도 긍정적 관심을 끌었다. 기존 치료제보다 짧은 기간 내에 백혈병 유전자를 감소시켜 더 이상 암이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국내 연구팀은 기존 치료제(이매티닙·글리벡)에 내성이 생겼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 18세 이상 환자(77명)에게 2009년 7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임상 1·2상(국내 9개 종합병원과 인도·태국 등)을 진행했다. 라도티닙 400㎎을 하루 2회 투여하며 3개월마다 추적·관찰했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김 교수는 “백혈병 유발 유전자(필라델피아 유전자)가 정상 유전자로 바뀌는 비율이 다른 치료제에 비해 높았다”고 설명했다. 백혈병 유전자가 정상 유전자로 바뀌는 반응을 보인 환자는 64.9%에 이르렀다. 생존율 또한 높았다. 12개월째 더 이상 백혈병이 진행하지 않은 환자는 86.3%였다. 안전성이 높고 이상 반응도 적었다. 김 교수는 “기존 치료제에서 보이는 심장독성과 폐부종 등 심각한 부작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동욱 교수는 “기존 치료 방법으로 실패한 환자에게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부작용은 피부 발진(전체 환자의 23%)·피로감(17%)·가려움(14%)·두통(13%)·식욕 부진(10%)·근육통(10%)·구역질(10%)·황달 등이었다. 김 교수는 “황달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지만 용량을 줄이거나 복용을 중단하면 잘 조절됐다”고 설명했다.

고가 백혈병 치료제의 대안

국내에서는 매년 300명 이상의 백혈병 환자가 발생한다. 기존 표적항암제를 처방받을 때 월 300만원의 비용이 든다. 1000여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다국적 제약사에 지출된다. 국산 신약은 약값이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하루 약값이 기존 치료제에 비해 절반(6만4천원) 수준이다.

 이번 임상2상 결과 발표를 시작으로 국내 연구진은 임상 3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 8월 11일 기존 치료제인 이매티닙(글리벡)에 내성이 있는 환자뿐 아니라 일반 백혈병 환자까지 치료 대상을 늘려(목표 240명) 임상3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애틀란타=장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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