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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쌓은 책이 그 어떤 빌딩보다도 높다 생각”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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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맹호 회장은 2005년 간이식 수술을 받은 후 실무를 자녀들에게 넘겼다. 그래도 “출근할 땐 아직 마음이 설렌다”고 말하는 영원한 현역이다. 최정동 기자

살아온 삶이 그대로 한 분야의 역사인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이문열이 “이 나라 지식산업계의 거인”이라 부르는 박맹호(79) 민음사 회장도 그런 사람이다. 1966년 서울 청진동 옥탑방에서 출발해 오늘날 하루 한 권꼴로 책을 내는 국내 최대의 지식공장이 되기까지 50년 가까운 민음사의 세월은 곧 한국 출판이 걸어온 길이다.

올해로 출판 인생 46년을 맞은 그가 자서전 을 냈다. ‘본인 자랑’이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여느 사회 명사의 자서전과는 좀 다른 인상이다. 한 글자 제목처럼 검박하고 기록에 충실하다. ‘세계시인선’ ‘오늘의 시인총서’ ‘이데아 총서’ ‘대우학술총서’ ‘세계문학전집’ 등 민음사의 굵직한 시리즈가 탄생한 사연을 연대순으로 뒤따르다 보면 어느새 한국 출판문화가 생성되고 성장해온 궤적을 접하게 된다. 13일 만난 박 회장이 “이 책은 실록(實錄)”이라고 설명한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팔순을 앞두고 자서전을 낸 이유는.
“이 나이쯤 됐으니 이젠 후배들한테 이런 점을 보고 배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메모를 하지 않는 나쁜 습관 탓에 근 2년간 준비했다. 도서관에 가서 신문 기사와 책을 뒤지고, 후배와 동료를 만나 기억을 복원하느라 아주 애를 먹었다.”

-제목이 간단하면서 상징적이다.
“따로 생각해둔 제목이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책’이라고 하자고 해서 좋은 것 같아 따랐다. 책을 통해 인간은 완성된다. 책과 친해서 망했다는 사람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인격이 엉망인 사람을 보면 인문교양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독서는 인간 성숙의 방법론으로 최상이라는 게 한결같은 믿음이다. 작가의 밑천도 결국 독서량에서 나온다. 많이 읽고 두루 섭렵한 작가들은 이야기감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인가.
“요즘은 누구 할 것 없이 활자문화의 종말에 대해 얘기한다. 하지만 흑백영화 시절에 출판을 시작해 컬러TV와 컴퓨터를 거쳐 스마트폰이 나온 지금까지 출판산업은 한 번도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늘 절망의 산업이라고 종사자들이 비관했지만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일본이나 유럽도 힘들지만 비교적 잘 버티고 있다. 한국은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한데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얘길 하고 싶다. 지금의 현상만 보지 말고 일단 고생해서 뭐든 만들어봤으면 좋겠다. 삶은 어차피 도박이고 내가 만들어가는 것 아닌가.”

-한국 문학의 산실로 불리는 민음사의 첫 책이 요가책이었다니 놀랍다.
“놀랐을 거다(웃음). 일본 번역서였는데 1만5000여 부나 팔렸다. 요새로 치면 20만∼30만 부쯤에 해당할 거다. 자본도 없었고 출판 시스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터라 한번 문을 두드려본다는 생각으로 냈다.”

-첫 책이 대박이 난 후 어떻게 됐나.
“유주현 작가의 신문 연재소설 장미부인을 냈는데 쫄딱 망했다. 그 다음 낸 책들도 줄줄이 깨졌다. 아마 그때가 민음사의 가장 큰 위기였을 거다. 약국 하던 아내가 활명수를 10원에 팔던 시절이었는데 빚을 3000만원이나 졌다. 그래도 그때 망한 게 약이 됐다. 망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민음사는 없었을 거다. 출판을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가 우연히 낸 책이 계속 잘됐으면 그건 오래 못 가는 지름길이었을 거다.”
박 회장은 자서전에서 부끄러운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출판사 경영이 어렵던 시절 일본 건축 서적을 무단 복제해 낸 일이다. 이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서 빚도 갚고 다음 책을 낼 발판을 마련했지만 양심의 가책은 심했다. 곧바로 손을 털었다.

“한번 하고 다시는 안 할 정도의 양심은 있었기에 지금까지 민음사가 품격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때 데리고 있던 영업사원들 중엔 회사를 나가 계속 해적 출판을 해 돈방석에 오른 사람도 많았다. 사실 출판은 막가자고 마음먹으면 덤핑 판매나 저작권 도둑질, 사재기 등 한이 없는 동네다. 그런 짓을 하지 않으니 민음사엔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책이 거의 없다. 나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관심이 없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민음사를 만든 건 한순간 반짝하는 베스트셀러라기보단 삼국지세계문학전집이나 밀란 쿤데라의 책 같은 스테디셀러다. 출판 불황에도 민음사가 매출 규모 1, 2위를 다툴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보험’이다. “길을 지나다 빌딩들을 보면서 ‘나도 돈 벌어 빌딩을 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난 빌딩을 올린 대신 평생 책을 한 권 한 권 쌓았지’라고 생각하면 뿌듯해진다. 출판은 ‘벽돌 쌓기’다. 50년 가까이 하나하나 쌓아올린 책이 그 어떤 이의 빌딩보다 높다고 자부한다. 그런 책들이 열매를 맺은 덕에 종업원들과 내가 먹고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기획을 시도할 수 있는 거다.”

-어떤 책을 내야 잘 팔리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을 텐데.
“10년 앞을 내다보고 남이 안 하는 걸 반 걸음 정도만 앞서 하라고 말하고 싶다. 민음사가 ‘세계시인선’이나 ‘오늘의 시인총서’를 내던 1970년대는 아무도 시나 비평집을 내지 않았던 때다.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뿌리가 3년 동안 3만 부 나가는 등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면서 국내 출판계에 비로소 시와 평론 붐이 불었다. 유도탄 얘기도 자주 한다. 유도탄은 수많은 부품을 제대로 조립해 프로그램에 따라 정밀하게 발사해야 궤도에 진입한다. 책 만들기도 마찬가지다. 기획부터 홍보까지 만전을 기해야 한다.”

-세계문학전집 1000권을 채우는 게 꿈이라고 했는데.
“15년간 300권이 나왔으니 내가 살아 있는 동안 1000권을 채우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400권까지 나오는 건 볼 수 있지 않을까. 직원들은 슬슬 세계문학전집을 마무리할 때가 아니냐는 얘기를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최근 레 미제라블을 냈는데 다섯 권짜리가 한 달도 안 돼 3만5000부나 팔렸다. 고전의 힘이다. 동양 고전도 번역하고 아직 캐내지 않은 전 세계 문학의 진주를 계속 발굴하고 싶다.”

-아직도 새 책을 낼 때마다 떨리는 마음인가.
“떨리는 게 아니라 겁이 난다. 아무리 견고한 방파제도 구멍 하나 뚫리면 끝장이다. 얼마나 긴장하고 버티느냐가 기업의 수명을 결정한다. 100년 다 돼가는 역사를 지닌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나 일본 이와나미 서점 같은 곳은 출판사가 기업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지식공동체다. 그렇게 오래 유지되며 지식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사회환원이 아닌가 싶다. 다행히 딸(박상희 비룡소 대표)과 막내아들(박상준 민음사 대표이사)이 책 만드는 재미를 깨달은 것 같아 잘 해나가리라 생각한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라 당선을 다퉜을 정도로 소문난 문학청년이었던 박 회장의 ‘활자 사랑’은 유명하다. 요즘도 새벽에 일어나 일간지 5개를 보고 출근해 사무실에서 나머지 일간지들을 꼼꼼히 읽는다고 한다. “지금의 내 실력을 키워준 게 신문인데 나이 들었다고 거를 수는 없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민음사에서 번역·출간해 60만 부 넘게 팔린 스티브 잡스다. “책이 워낙 두꺼워 세 부분으로 분철해 읽었다. 사회가 인재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이 책에서 다시금 실감했다. 책 읽기는 고된 노동이지만 읽는 사람에게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값진 일이다.” ‘출판 거인’의 인터뷰는 책 예찬으로 시작해 책 예찬으로 마무리됐다. 자서전 제목으로 ‘책’ 말고 다른 제목을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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