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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 대신 ‘51 대 49 사회’ 합칠 대통합 메시지 발표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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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호 06면

대선이 사흘 앞이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엔 공통의 금기어(禁忌語)가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다. 선거 캠프 위아래를 막론하고 이 말은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오차범위 내 박빙 승부 속에서 자칫 “오만의 샴페인을 먼저 터뜨렸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5년 임기 성패 좌우할 ‘대통령 당선인’의 첫 사흘

새누리당에선 한 달 전쯤 인수팀을 준비하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문 후보 적극 지지를 선언한 뒤 올스톱 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디에선가 준비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은 있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론 아니다. 새누리당 서병수 중앙선대위 당무조정본부장은 “인수팀? 내가 아는 한 선거 이후를 준비하는 별도 조직은 없다. 지금은 모두 승리만을 향해 달려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정세균 선대본 상임고문도 “인수위를 언급할 때가 아니다. 이기기 위해 모든 힘을 쏟을 때”라고 말했다.

선거가 끝나면 어차피 승자와 패자는 갈린다. 박·문 후보의 레이스는 18일 자정으로 끝난다. 19일 투표를 마치면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호를 이끌 선장이 가려진다. 미국의 대통령학 전문가인 찰스 존슨은 “취임 전 정부 구성을 치밀하게 잘한 당선인들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고, 그렇지 못한 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문 후보에겐 지금 승리 이후의 준비란 사실상 없다. 준비 부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SUNDAY가 대통령 당선인의 첫 사흘에 대해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대통령학 전문가인 고려대 함성득 교수, 연세대 최평길 명예교수, 한·미 대통령직 인수 과정을 연구하고 대통령의 성공, 취임 전에 결정된다를 쓴 이경은 전 미국 헨리 스팀슨센터 객원 연구원 등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향후 5년간 새 대통령의 성공은 당선에서 취임까지 67일 간에 달렸고, 특히 첫 사흘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조언은 ▶가능한 한 빨리 인수위원장·비서실장을 정하라 ▶국민 대통합의 메시지를 발표하라 ▶승리에 도취하지 말고 구름 위에서 내려와라로 요약된다.
 
미 대통령 대부분 선거 전 인수팀 꾸려
‘미국인의 영원한 카우보이 로널드 레이건. 미국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인기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 인수 작업에 관한 한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힌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이 진단한 레이건의 성공 요건은 다음과 같다. 하나, 대통령직 인수위를 당선 전에 꾸렸다. 둘, 소규모지만 핵심 측근으로 꾸렸으며 선거캠프와 완전히 선을 그었다. 셋, 이들에게 확실한 힘을 실어주어 경쟁과 다툼이 일어날 여지를 아예 없앴다. ….’(대통령의 성공, 취임 전에 결정된다 中)

빅2 캠프에 지금 승리 이후의 준비가 없다면 국정운영 준비는 이미 늦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통령 당선인 결정 후 취임까진 67일이 남지만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실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30~40일에 불과하다. 함성득 교수는 “인수위 준비는 당선 이전부터 시작돼야 한다”며 “국정 인수를 위해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당선인이 결정된 첫날인 20일에 당선인 비서실장과 대변인이 결정되고 3일 이내에 대통령 비서실장, 인수위원장이 결정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향후 5년간의 국정 방향을 결정한다. 수많은 이론과 견해가 난립하기 때문에 당선인의 국정 철학에 부합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는 인물이 인수위원장으로 빨리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장도 빨리 결정돼야 청와대 업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고 차기 정권의 핵심 보직에 대한 인선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함 교수는 “행정안전부에선 인수위가 구성되면 바로 들어가서 일할 수 있도록 인터넷 회선, 집기 등 사무실 환경을 미리 완비해 놓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경은 전 연구원은 미국과 우리의 대통령직 인수 과정을 이렇게 비교했다. “2008년 11월 당선된 오바마는 그해 5월부터 핵심 측근과 인수 과정을 논의했고 6월엔 인수 작업을 총지휘할 책임자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를 영입했다. 우리는 지금 인수 준비를 말하면 혼자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난타를 당할지 모르지만 비난이 아니라 격려를 받아야 한다. 집권하는데 정말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인수 준비는 김칫국 마시는 일?
대통령 당선인의 첫 3일 움직임은 그 자체가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2007년 12월 20일 오전 중앙선관위로부터 당선증을 받은 이명박 당선인은 이날 오후 1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를 만났다. 같은 날 저녁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주한 일본대사, 글리브 이바센초프 주한 러시아 대사, 닝푸쿠이(寧賦魁) 중국 대사 등 4강 대사도 21일 이전에 모두 만났다. 4강 외교에 힘쓰고 특히 전임 정부에서 껄끄러웠던 한·미 관계 복원에 힘쓰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2002년 12월 20~22일 당시 노무현 당선인은 서민 풍모를 느끼게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대선 다음날인 20일 서울 여의도의 한 대중 목욕탕에 혼자 나타나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고, 주말인 21~22일 휴양차 제주도에 내려갈 땐 공군 전용기 대신 김포공항에서 일반 비행기를 이용했다. 방탄 리무진은 사양했다.

이번 대선의 승자는 당선인으로 결정된 첫 날 국민 대통합의 메시지를 강력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게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보수·진보의 치열한 대결 구도 속에서 흑색선전이 난무한 선거가 끝난 뒤 국론을 하나로 결집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국민 대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며 “현충원 참배 같은 기본적 움직임뿐 아니라 51 대 49로 분열된 사회를 하나로 합칠 수 있는 동선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 참여한 현 정부 고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선인이 초기에 어디를 방문하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고 박정희 대통령 관련 장소,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뿐 아니라 상대 진영을 아우를 수 있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

함 교수는 “당선이 결정된 첫날 국민 대통합 메시지를 바로 발표해야 한다”며 “늦어도 둘째 날엔 패배 후보와 직접 통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직 대통령의 도움 없이는 국정의 원활한 인수가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과도 둘째 날 통화하고 청와대 방문 일정과 의제를 조율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경은 전 연구원은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11월 7일 첫 기자회견을 ‘미국엔 오로지 하나의 정부와 한 명의 대통령만이 있다. 내년 1월 20일까지 그 정부는 현재의 부시 정부’라고 시작했다”며 “당선인으로서 새로운 권력을 행사할 뜻이 없다는 걸 분명히 하고 향후 국정 설계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초기 방문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전까지 예비 대통령의 자격을 갖는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에 따라 청와대 경호처가 현직 대통령에 준해 24시간 경호를 책임진다. 가족도 청와대의 경호 대상이다. 당선인에겐 어디서든 24시간 유·무선 통신이 끊기지 않도록 통신망이 제공된다. 취임 전까지는 공무원이 아니기에 월급이 지급되지 않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에 배정된 예산에 따라 활동비를 받는다. 원할 경우 정부의 안전 가옥을 사용할 수 있고 대통령이 타는 방탄 리무진 차량도 지원된다. 당선인과 배우자에겐 진료 서비스가 제공된다. 대통령 후보에서 당선인으로 변신하는 순간 주변에선 박수가 터지고, 찬사가 이어진다. 언론은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밝히고, 상대 진영의 공격도 사라진다.

최평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즉각적인 청와대의 경호와 주변의 환호에 휩싸이다 보면 자칫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허황된 생각에 빠질 수 있다”며 “하루빨리 구름 위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내디뎌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국민에게 한 약속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정부 예산 등을 고려한 실질적 정책 준비에 나서고 상대 후보의 좋은 정책은 받아들인다는 자세 아래 중립지대 전문가를 불러모아 인수위를 꾸리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대통령직의 엄중함을 고려하면 하루라도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당선인은 선거 운동에서 국정 운영으로(from campaigning to governing) 상황이 바뀌었음을 빨리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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