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김정은 “적들이 요격하면 진짜 전쟁하려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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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2009년 4월 은하-2호 로켓 발사를 지켜보기 위해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찾아 전병호 노동당 군수공업담당 비서와 악수하고 있다. 김정은 뒤에는 주규창 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조선중앙TV 화면]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후계자 내정 시절부터 장거리 로켓 발사에 주도적 역할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정부 당국자는 13일 “김정은이 2009년 4월 은하-2호 로켓 발사 때 처음 평양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방문했다”며 “당시 준비상황과 발사장 경계 문제를 직접 챙긴 것으로 북한 내부 영상물을 통해 파악했다”고 말했다.

 조선중앙TV가 1월 방영한 ‘백두의 혁명위업을 개척하시어’라는 이 기록영상에는 한·미를 ‘적(敵)’으로 부르는 호전적 모습의 김정은이 나타난다. 그는 “오늘 각오하고 그 곳(지휘소)을 다녀왔다. 적들이 요격을 한다면 진짜 전쟁을 하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당시 한·미 일각에서 장거리 미사일이란 판단에 따라 요격을 검토하자 대응에 나섰다는 게 북한 주장이다.

 영상에는 김정일이 “요격에 나선 적들에게 반(反)타격을 가한 게 우리 김 대장(김정은)이다. 그가 반타격 사령관으로 육해공군을 지휘했다”고 말한 것도 소개된다. 김정은은 미사일 개발 주역인 전병호 노동당 당시 군수공업 비서와 주규창 기계공업부 제1부부장(현재는 부장)과 손을 잡고 귀엣말을 했다. 김정일과 김정은이 자리를 바꿔가며 촬영하느라 수행원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엿보인다. 로켓 발사를 후계자 때의 김정은 업적으로 선전하려는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이란 해석이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이번 발사 성공은 김정은이 후계권력을 다지는 데 상당한 보탬이 될 것”이라며 “7월 이영호 총참모장 숙청 이후 어수선했던 군부 장악에도 호재”라고 말했다.

 대북 정보 관계자들은 김정은이 이번에도 지휘소에서 발사 장면을 지켜봤을 것으로 판단한다. 리젠궈(李建國) 정치국원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 대표단을 만난 지난달 30일 이후 김정은은 공개활동을 접었다. 로켓 발사 문제에 집중하려 했다는 관측이다.

 로켓 발사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이자 조만간 이를 김정은의 작품으로 찬양하는 선전이 봇물을 이룰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동안 주민들에게 장거리 미사일로 미 본토를 타격하는 선동작업을 벌여온 사실에 주목한다. 북한은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시작으로 시험발사 때마다 이런 움직임을 강화했다.

 ‘주체 조선’이라고 표기된 미사일이 워싱턴과 서울·도쿄를 겨냥하는 포스터도 선보였다. 성조기가 휘날리는 워싱턴의 미 의회 의사당을 북한 미사일로 타격하는 선전벽화도 평양 시내에 등장했다. 브라이언 마이어스 동서대 교수는 “1980년대 동독 정부는 주민들에게 미국의 위협을 강조해 겁을 주는 방식으로 통치했는데 북한은 다르다”며 “잘 세뇌된 주민들은 이번 로켓 성공으로 당국이 선동한 ‘강성대국’이 현실화할 것이란 기대를 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외무성은 12일 “위성 발사는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평화적 사업”이라며 “유엔 안보리 등이 관련할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우주의 평화적 이용권리는 국제법에 의해 공인된 것”이란 입장도 냈다. 통합진보당도 지난 1일 북한의 로켓 발사 예고에 “우주 조약에 기초한 (북한의) 자주적 권리니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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