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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배명복 칼럼

안보 위협하는 대북 정보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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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스물여덟 살의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측근들과 ‘은하-3호’ 로켓 발사의 성공을 자축하며 박장대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허를 찌르며 발사한 로켓 한 발로 그는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서울에서 도쿄, 워싱턴에서 베이징, 뉴욕에서 모스크바까지 모두 불난 호떡집이 됐다. 모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꼴이 가장 우습게 된 것은 우리 정부다. 청와대와 군(軍), 정보 당국 모두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오보를 낸 언론도 마찬가지다. 어제 아침 한국 언론은 북한이 발사대에 세웠던 로켓을 해체해 수리 중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정부 당국자가 “로켓 조립에 사용했던 크레인을 동원해 3단계 로켓부터 해체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언론에 흘렸기 때문이다. 연내 발사가 어려워 보인다고 보도한 신문도 있었다. 그런데 북한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어제 아침 로켓을 발사했고, ‘광명성-3호’ 위성을 보란 듯이 궤도에 진입시켰다.

 북한은 당초 10~22일 로켓을 발사한다고 발표했다가 1단계 로켓 일부 부품의 결함으로 발사 시기를 10~29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뭔가 이상이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여기에 북한의 발사 기술에 문제가 있기를 바라는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가 덧씌워지면서 위성 사진 판독이 뒤틀렸다. 불확실한 정보에 왜곡된 분석이 결합된 엉터리 정보가 언론에 새나가면서 정부와 언론 모두 망신을 당했다.

 정보의 수집-분석-평가-가공-유통-관리라는 모든 과정에서 총체적으로 구멍이 뚫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정보의 분석과 판단을 엄정하게 했더라면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부처 이기주의와 상호 불신에서 비롯된 허술한 정보 관리도 심각한 문제다. 북한 로켓의 해체라는 1보가 나온 곳은 청와대였고, 이를 국방부가 사실상 확인해주면서 결과적으로 모든 언론이 오보를 냈다. 국방부 장관은 출입기자들과 14일 송년 만찬 일정까지 잡았다고 한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북한이 로켓을 쏠 리 없다고 오판했다는 얘기다. 그래 놓고 지금은 “발사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며 면피에 급급하다.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도 정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52시간이 지난 뒤 북한의 공식발표를 통해 알게 됐을 뿐이다. 북한이 중대발표를 예고한 19일에도 정부는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당일 아침 청와대 직원들은 케이크를 앞에 놓고, 이명박 대통령의 생일과 결혼 기념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다. 중대발표 예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통일부 간부들은 북한 텔레비전에 등장한 검은 상복 차림의 아나운서를 보고서야 허겁지겁 청사로 뛰어 들어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보 문외한인 원세훈씨를 국정원장에 임명할 때부터 정보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그는 서울시에서 잔뼈가 굵은 지방행정 전문가이지 정보 전문가가 아니다. 그는 국정원 3차장 산하의 대북전략국을 해체함으로써 대북 인적정보(휴민트) 조직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색깔을 뺀다며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국정원은 연간 1조원의 혈세를 쓰면서도 제 역할을 못하는 무능한 조직으로 전락했다. 통신감청 같은 신호정보(시긴트)를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도 제 역할을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국정원과 서로 밥그릇 싸움이나 벌였을 뿐이다.

 미국은 자동차 번호판까지 식별이 가능한 초정밀 첩보위성을 통해 북한을 손바닥처럼 감시하고 있다. 미국에서 받은 위성정보를 판독하고 분석하는 것은 국정원과 군 정보당국의 몫이지만 이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음이 이번 북한 로켓 발사 정보 실패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4강에 둘러싸여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정보 능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확한 정보를 얼마나 신속하게 입수해 제대로 판단하고 활용하느냐에 국가의 명운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가장 먼저 할 일 중 하나는 무너진 국가 정보 능력의 복원이다. 대북 정보 능력의 강화는 국가 안위와 직결된 문제다.

 그러나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 같다. 공약집 어디에도 정보 실패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다. 북한이 로켓을 쐈다고 비난하고, 호들갑만 떨 일이 아니다. 총체적 정보 실패를 바로잡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말로만 떠들지 말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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