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국민연금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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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우리가 목격한 정치는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의식과 분위기를 접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연금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상황을 그다지 낙관할 수 없다는 점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연금제도란 노후 소득보장을 위한 제도다.

20대에 직업을 가지면서 보험료를 내기 시작하고, 60대부터 급여를 받게 된다. 이는 연금제도가 적어도 두 세대(60년)의 시간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며, 5년마다 변화되는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연금제도의 개혁은 그리 인기있는 공약은 아니다. 연금제도의 역사가 오래 돼 뿌리를 내린 서구의 경험에 의하면, 연금제도의 개혁을 추진한 정권은 다음 선거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

특히 우리의 국민연금제도는 재정문제가 심각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개혁에는 국민의 반발이 불가피할 상황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의 재정문제가 현실화하는 것은 20~30년 후의 일이므로, 연금제도 개혁이 '폭탄돌리기'식으로 계속 뒤로 미뤄질 가능성이 큰 실정이다.

국민연금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은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다는 점이다. 불신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제도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제도 운영의 미숙함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연금을 저축과 유사한 제도로 인식하거나, 가입을 강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제도 시행의 기간이 짧고, 이로 인해 연금제도에 대한 지지세력이 미약하다는 것도 연금제도의 필요성을 의심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연금기금의 운용을 비롯한 미숙한 제도 운영이다. 주식시장 부양을 위한 빈번한 자금투입, 1백조원을 넘는 기금운영에 대한 실효성 있는 통제장치의 부재, 자영업자 소득파악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 그리고 보험료 징수기관의 서비스 정신 부족 등이 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 것이다. 이는 사회적 합의가 무엇인지, 제도 운영에 대한 협치(協治)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연금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연금재정의 불안정성이다. 재정문제의 원인은 제도의 시행 초기에 '저부담-고급여'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연금제도의 구조 개혁을 하더라도,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보험료 인상과 급여 축소는 불가피하다.

이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국민에게 숨김없이 이야기하고,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그나마 1998년의 제도개혁으로 5년마다 정기적인 재정계산을 실시하도록 법제화한 점은 다행한 일이다.

국민연금제도의 문제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각지대의 해소다. 1천여만명의 지역 가입자 중에서 40% 정도가 보험료 납부 예외자라는 점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안이다.

현행 제도상 일정 규모의 납부 예외자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지나치게 많은 숫자다. 보험료를 납부하기 어려운 빈곤층 내지는 소득이 불안정한 계층을 연금제도에 무리하게 편입한 결과다.

연금제도가 전 국민의 노후 소득보장을 위한 제도라는 점에서 사각지대의 해소는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정책목표라 할 것이다.

정책과 제도를 개혁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개개인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연금제도 개혁은 어려운 문제다.

최근 급격한 출산율의 감소와 더불어 향후 인구 노령화의 급속한 진행은 국민연금의 문제를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때문에 연금제도 개혁은 아마추어들이 아닌 진짜 전문가들이 큰 안목을 가지고,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실용적인 접근이 전제돼야 한다.

이념과 목표에 대한 과도한 집착, 개혁과 반(反)개혁의 이분법적 사고, 그리고 짧은 시간에 이루려는 조급증은 절대 금물이다. 겸허한 자세로 신중하고 일관성있게 추진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또한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

정흥원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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