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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그 주변-「세태의 거울」총2831편 <본사응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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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 문학청년이 숨이 차서 달려 왔다. 바로 마감 전에 내 놓고 간 작품 『인간적』. 무딘 연필에 침을 묻혀 양면 괘지에 꾹꾹 눌러 쓴 「지폐전쟁」은 실업 5년의 감상문. 누구의 「노·팬트」는 저습지, 어느 사회의 어두운 단면. 해마다 각 신문사에 쏟아져 들어오는 「신춘문예」들은 세태의 거울이다. 누구는 「성실한 인간」에서 그 발상을 취재했고, 또 누구는 사회와 그 속에서 막 살아가는 인문들의 면모를 고발했고, 또 백화 난만을 꿈꾸는 상수도 엿보인다. 어느 해 없이 신춘문예의 응모자가 격증한 것도「뉴스」라면 「뉴스」다. 그것은 3, 4년부터 주목을 끄는 현상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정치현상」에 관심도가 깊은 것은 65년의 특색을 이룬다. 원고지의 현실 참여랄까? 사상은, 그리고 그것에의 관심은 그만한 깊이로 심화되고, 내면의 눈은 밝아지고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본사에 접수된 신춘 「신춘문예」의 단편은 4백32편, 시는1천3백94편. 그 밖의 부문들을 합치면 무려 2천8백31편. 시인 서정주씨는 「문학가 지망생」의 증가 일로를 이렇게 평가한다.
『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독자가 줄었던 시에 있어서도 그 말은 적용된다.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이 있다면 문학지의 지면이 협소하다는 문당 현실이 있을 것이다.』
황순원씨는 좀 어두운 눈으로 말한다. 『대학 졸업생은 해마다 늘고, 그들의 일자리는 변변찮고, 그런 현실에 싫증 난 것의 일단 면은 아닐까?』
응모자의 직업이나 학력이 일일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꼭 문학 전공생」만은 아닌 것을 지적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업 얘기, 궁색한 그 푸념들, 「자살자원」이니「제기랄 세상」이니 하는 식의 제목들은 그런 「메타포」였다.
그러나 이어령씨(문예비평가)는 우선 「문학도의 자연 증가」를 지적한다. 동난 후 문학 독자, 아니 넓은 의미의 독자가 꾸준히 붓고있는 현장. 그는『거의 두 배로 늘었다』고 말한다. 요즘의「베스트·셀러」는 으레 1만 부를 넘는 수가 아닌가? 『고교와 대학 등 「고등」졸업생이 날로 증가하고있지 않으냐?』고 이씨는 역시 반문한다. 그는 재미있는 한마디도 덧붙인다. 『이슬만 먹던「백의 숙제」작가들의 시대는 갔다. 돈 없이 무슨 문학을 하나? 명예를 넘어 「코머셜」해진 것-. 말하자면 일종의 「퀴즈」성 마저 띄고 그들은 작품을 쓰게 된 것이다. 』 그리고는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매스콤」이 그 책임을 져야된다. 연례 행사로 그냥 넘겨 버리는 습관 말이다. 문학도의 든든한 후견인이 되어 작가의 창작생활을 의한 뒷바라지를 해줄 것.. 그렇지 않으면 신춘문예의 의의는 없다』고-.
이런 저런 문제는 역시 작품의 분에 있다. 많은 신춘문학도들은 「인간의 실의」에, 「사회의 병폐에 무던한 관심을 쏟는다. 「구망」이란 제목(소설 부문에서)이 무려 5가지. 그와 비슷한 표현, 가령 「태양이 질 때」「팔자 소관」,「장벽」,「버려진 사람들」, 「한 많은 세월」,「인간 사표」,「내일을 잃은 사람들」「인간 낙엽」등이 잇달았다.「섹스」얘기는 그 수를 훨씬 능가한다. 「성 전쟁」을 비롯해 음담 패설이 버젓하다. 때없이 쏟아진 실연족 들의 눈물바다. 그것보다도 차라리 흐뭇한 「우청보」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성은 성으로 존재할 뿐』이다. 과목에 실과가 여무는 아름다움은 없다.
병영의 사건들은, 유쾌한 일들이 별로 없다. 그들은 때때로 병영 생활을 인간의 변질된 생활방식으로 치려든다. 그리고 많은 얘기들이 거기에 숨어있다. 4백여 편의 단편이나 1천 수백 편의 시에는 한결 같이 「시니시즘」(견유주의)이 흐른다. 인간들은 조소롭고, 사회는 냉소롭고,. 「성」은 홍소롭고….이런 식이다. 무엇인가를 긍정하려는 미소와 「휴머니즘」의 가뭄이다. 성명서 같은 시들, 고발상 같은 소설들. 회의와 「페이서스」와 비감의 충만-. 황순원씨는 걱정을 했다. 『작품의 질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매해 중앙지들의 신춘문예를 심사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성실한 문학도들을 매매로 발견한다. 한 장의 원고지에도 발열의 아픔과 고통을 담으며 생명을 넘어 생명으로 뻗는 자세. 사색만 하지 않고 노래도 부르려는 시인. 「신춘문예」의 문을 여는 것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데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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