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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그래도 뉴라운드 출범해야

중앙일보

입력

세계무역센터(WTC) 테러가 있은 후 일부 나라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섬뜩함을 느꼈다.

인간의 짓으로 볼 수 없는 잔인성을 두고 환호하는 데서 섬뜩함을 느낀 것은 아니다. 내 눈에는 그 테러와 환호가 군사.경제의 초강대국 미국에 대한 도전을 넘어서서, 안정 속의 확대를 생명으로 하는 국제경제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 2차세계대전前과 흡사

한줌도 안되는 테러리스트의 손에 국제교류가 휘둘리거나 움츠러든다면 그것이야말로 반 세계주의자들이 바라는 바다.

그런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국제금융 체제가 아직도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고, 2차세계대전 후 50년 넘게 세계경제 체제를 지탱해 온 세 개의 기둥 중 두 개가 흔들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연례총회를 취소한 것이다.

그 여파로 세계경제질서의 또 다른 기둥 세계무역기구(WTO)마저 11월 중동 카타르에서 열릴 예정이던 각료회의를 취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경제는 미국에 대한 테러에 따른 불경기 심화 이상의 큰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

카타르 회의를 피하려는 표면상의 이유는 그 지역에 감도는 전운 때문이다. 그러나 각료회의를 꺼리는 속사정은 다른 데에 있다.

그 회의가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뉴라운드)을 출범시키게 돼 있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들이 자유무역 체제의 강화를 꺼리고 있다는 얘기다.

외국 수입품에 대해 반덤핑 규제를 마음대로 취하고 싶어하는 미국부터 그렇다. 뉴라운드가 열리면 함부로 수입규제를 할 수 없게 된다. 유럽은 정치적인 이유로 농업보조금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뉴라운드가 열리면 보조금 삭감 문제가 도마에 오를테니 그것을 꺼리고 있다.

개도국이라고 뉴라운드 출범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과거 우루과이 라운드 때 합의한 시장개방 조치를 마무리하는 일도 버거운데, 새롭게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무역협상을 곱게 볼 이유가 없다.

우리는 더하다. 쌀 시장 개방은 아예 머리 속에 담아두지도 않고 있는 입장에서,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이 벌어지면 쌀 시장 개방압력이 집중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들 마치 기다렸다는 듯 테러가 터지자마자 각료회의 취소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 테러로 세계경제가 자유무역으로의 발걸음을 멈추면 그것이야말로 반 자유무역주의자들이 바라고 있던 바 일게다.

지금 세계의 경제상황은 2차대전 전의 상황을 너무나 닮아가고 있다.

경기침체로 정치적 압력 아래 놓인 주요 교역국들이 자의적인 수입규제를 남발하고, 그것이 강대국 간의 무역분쟁으로 번지고, 결국에는 세계대전으로 귀결된 그때와 겁날 정도로 상황이 비슷하다는 얘기다.

이미 선진국의 일방적 수입규제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고 그 가장 큰 피해국의 하나가 한국이다. 또 모든 나라가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편짜기에 혈안이 돼 있으나, 그 추세에서 한국만 빠져 있다.

자유무역 체제는 마치 자전거 타기와 같다고 한다. 자유무역 확대를 향한 페달 밟기를 멈추는 순간 보호주의의 땅바닥으로 쓰러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다.

***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

더구나 시애틀 각료회의의 실패에 이어 이번 각료회의마저 무산된다면 '자유.공정무역질서의 수호자' WTO의 권위에 치명타가 될 것이다.

이는 세계시장이 무법천지가 됨을 의미하고, 따라서 우리처럼 무역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나라, 국내시장이 좁고 가난한 나라들의 권익은 강대국의 횡포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카타르에서의 WTO 각료회의는 꼭 열려야 한다. 거기서 뉴라운드를 반드시 출범시켜야 한다. 세계경제가 이처럼 불안한 때일수록 뉴라운드는 더 절실하다.

김정수 <논설위원 겸 경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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